겁쟁이들의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는 겁이 많았다.
정신적으로 늘 절망 직전의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그가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변의 기대가 컸고 그만큼 요구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참여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츠바이크의 삶을 소설로 쓴 로랑 세크직에 의하면 그는 문학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비난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는 인물들의 광기 어린 열정 외에는 세상에 달리 말하고자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슈테판 츠바이크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대단히 많은 인물들에 대해 쓴 전기 작가이기도 하다.
에라스무스,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두루두루… 그건 타인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실제로 타인의 마음 상태를 흉내 낼 수 있고, 자신 안에 있는 감정들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자기 자신의 행동인 양 뇌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이입을 참 잘한 작가였다.
그는 그렇게 사람의 영혼을 깊게 파고들고 오래 붙들면서 쉬지 않고 글을 썼다.하지만 그는 센 사람이 아니었다.
전쟁에, 유명세에, 기대치에, 의무에 시달리면서 그는 자신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이상 목소리를 낼 만한 힘이 없었고, 그의 정신 어디에서도 중대한 진실이 솟아날 구석을 찾을 수 없었으며, 아직도 비밀로 남아 있는 출구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했다.
사람의 뇌는 지속적으로 고통에 노출이 되면 손상된다.
술이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처음부터 행복할 줄 몰랐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행복해지는 데 실패했다.
결론은 자살이었다.영혼의 반려자였던 ‘강한’ 첫번째 아내가 아니라 늘 아프고 흔들렸던 ‘약한’ 두번째 아내와 함께.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책을 좋아해도 슈테판 츠바이크를 모르는 독자들은 많다.
나도 그랬다. 역사는 중재하고 화해하는 자들을, 인간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름대로 조용히 봉사했지만 뛰어드는 대신 도망쳤기 때문에 경멸당하고 무시당했다. 혹시 그것이 이유일까?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에도 겁쟁이가 나온다.
물론 이 두 이야기를 화살로 꿰뚫는다면 촉에 묻어나올 단어는 ‘겁’이 아니라 ‘몰입’이다.
츠바이크에 의하면, 한 인간은 자신의 모든 힘을 작동시키는 순간에만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참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