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삶의 시작과 죽음으로 인한 일생의 끝은 생명의 가치 안에 있고 그 가치는 절대 훼손되거나 폄하돼서는 않된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존중받아야 함이 당연한 이유다. 죽음에 대한 법의 개입은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프랑스 의회가 사실상 안락사를 허용하는 이른바 ‘깊은 잠(Deep Sleep Bill)’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에 이어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안락사 허용 국가가 된다.
안락사 확산 분위기에 서구사회의 오랜 안락사 논란이 다시 뜨겁다.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죽음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란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경우 반드시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가 필수란 사실이다.
佛, 사실상 안락사 허용법 통과
최근 프랑스 하원은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는 ‘깊은 잠’ 법안을 통과시켰다. 올해 5월 상원 의회까지 통과되면 프랑스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에 이어 유럽에서 다섯 번째 안락사 허용 국가가 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인 96%가 이 법안에 찬성해 상원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깊은 잠 법안은 의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음식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데, 조건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여야 하고 본인이 요구해야 한다. 병·사고로 의사표현이 어려울 경우 사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면 유효하다. 프랑스는 2005년부터 치료가 힘든 말기 환자의 경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의사가 직접 안락사에 관여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벨기에는 안락사를 선택한 죽음이 2007년 2%에서 2013년에는 4.6%로 6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스위스의 안락사 조력단체 회원이 지난해 25% 증가하는 등 유럽에서 안락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주 등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캐나다 퀘백주는 2016년부터 허용된다.
‘살 권리’만큼 절실한 ‘죽을 권리’
치유할 수 없는 병으로 숨만 쉬는 삶을 유지하기보다 존엄 있게 스스로 삶을 마치겠다는 안락사는 서구사회에서 오랜기간 논란이 되어왔다. 말기 암환자, 희귀병 환자들은 통증, 호흡곤란, 구토, 불안장애 등이 복합되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 속에 살게 된다. 현재 의학적으로 가용한 최대치의 약물요법으로는 이런 고통으로부터 환자가 편해질 수 없다. 극심한 통증을 견딜 수밖에 없는 환자의 처절한 고통에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안락사 지지자들은 삶의 주인공이 바로 그 자신인 것처럼 죽음 역시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을 마감하는 일부라는 얘기다.
지난해 사망한 영국의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는 마지막 방송 인터뷰에서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충격적이며 이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며 “존엄사는 내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이런 식으로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문제”라고 말했다. 퍼디는 다발성 경화증을 20년 동안 앓아왔으며 물과 음식 섭취를 거부해 사망했다.
존엄사는 ‘그릇된 연민’ 일뿐
프란치스코 교황은 안락사를 반대하는 견해를 분병히 드러낸다. 안락사를 품위 있는 인생의 종결이라는 의미로 존엄사로 표현하는 것도 그릇된 연민이라며 “병자나 노인을 쓸모없다고 여겨지면 버리는 세태를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종교계에서는 삶이 자신의 결정과 의지로 주어지지 않았듯이 죽음 역시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캄펜대의 테오 보어 교수는 “개인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인내, 불가항력에 맞서는 최선의 노력 등과 같은 다른 소중한 가치가 가려져서는 않된다. 고통을 견뎌낼 방법을 더는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자율성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