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쿠데타'란 단어는 이제 아프리카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됐었다.
지난 19일 터진 태국 쿠데타는 그래서 아시아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적 가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잘 조화시켜 나가는 모범 국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다니….
다행히 15년 만에 쿠데타가 재발한 태국의 정국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20일 저녁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쿠데타가 발발한 지 하루 만에 지지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쿠데타 주도자인 손티 장군도 다음 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새 의회와 새 총리도 임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5년 만의 쿠데타,왜 일어났나
겉으로 보면 탁신 치나왓 총리(57)의 부패와 권력남용이 주된 원인이다.
탁신 총리는 지난 1월 그의 일가가 통신주 매각으로 19억달러의 차익을 챙겼으면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 국민의 분노를 샀다.
곧바로 퇴진 시위가 촉발돼 사임 위기에 몰렸다.
쿠데타 발생 직후 야당과 여론도 "탁신이 쿠데타 명분을 주었다"며 탁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손티 장군도 20일 기자회견에서 "탁신 총리가 초래한 사회의 격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라며 쿠데타 이유를 밝혔다.
탁신 일가의 탈세 의혹 등 부패,민주제도 약화 등이 초래한 사회혼란을 일소하기 위한 쿠데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태국의 전통과 미래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을 만나게 된다.
자수성가형 기업가로서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민영화,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탁신의 철학과 단순하게 살면서 도덕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태국 전통의 '자립경제'형 사고가 충돌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탁신의 비전에는 기존 질서를 허물려는 농민과 빈민층이 절대적 지지를 보낸 반면 태국의 지식인층과 엘리트들은 푸미폰 국왕으로 표현되는 자립형 사고를 대변했다.
○포퓰리즘의 종말
탁신의 사고는 개혁적이고 글로벌 관점을 지닌 것이다.
문제는 지지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농민 빈민 서민층을 '돈'으로 사로잡으려 했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가 '포퓰리즘'(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으로 이어진 것이 패착이었다.
탁신은 1998년 타이락타이(태국인들은 태국인을 사랑한다는 뜻)당을 창당, 2001년 총리에 취임했다.
곧바로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카드를 꺼내 들며 농민과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