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한 후 남한에 정착한 사람(새터민)은 1953년 휴전 직후부터 있어왔지만 과거엔 개인적인 사유가 많았고 극소수였다.
훈련용 비행기를 몰고 남하한 이웅평 대위(1983년),리철수 대위(1996년)가 대표적이다.
탈북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부르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1994년 김일성 국가주석의 사망 후 구심점을 잃은 북한은 소위 주체 농법의 실패,미국과의 관계 악화에다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져 배급제를 중단하게 된다.
자유로운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북한에서 배급제 중단은 바로 대기근을 의미했다.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는 1995년부터 3년간 북한에서 발생한 아사자 수를 37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때부터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는 보통 주민들의 '생존형 탈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서가 바다이고 남쪽은 휴전선으로 막힌 북한에서 중국과의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은 유일한 탈출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초기엔 중국에 정착하거나 주중 한국대사관 혹은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 비행기나 배를 타는 것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감시가 엄해져 중국에 숨어 살거나,일단 중국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그 다음으로 발견한 루트는 중국 남단 윈난성에서 베트남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길은 2004년 7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집결한 468명의 탈북자를 두 번에 나눠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노출된 이후 거의 폐쇄된 상태다.
지금은 미얀마나 라오스를 한번 더 거친 후 태국에 모였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흔하다.
멀고도 먼 길을 돌아 남한으로 오는 것이다.
중국에서 동남아까지는 돈을 받고 탈북자들을 이동시켜주는 '탈북 기획자'들이 있고 일단 동남아에 오면 한인 교회,비정부 단체,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북한에서 국경을 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탈북자들이 중국 대륙을 관통해 동남아를 여행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중국 내에서는 국제인권단체들이 고발하듯 인권문제,특히 여성 탈북자들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적 유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미얀마와 라오스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는 튜브를 타고 메콩강을 떠내려가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
더구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상 어떠한 제도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제3국들이 나서서 탈북자를 돕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경제적인 부담 때문이다.
북한과 정식 수교를 맺고 있는 중국 태국 베트남은 이들을 정치적 박해나 전쟁,또는 그에 준하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 북한을 탈출한 '난민'으로 인정해주기를 꺼린다.
또 탈북자들을 위해 한번 길을 터줬다간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대규모 난민을 떠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난민이 아니면 불법 입국자,즉 엄격한 의미에서 범법자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숫자가 적을 때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눈감아 주다가,이동 규모가 커지고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 제지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