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둥의 진실
대학생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상하이의 중심지 푸둥구는 구청 건물만 여의도의 63빌딩 만하다.
먼저 푸둥의 발전에 대한 슬라이드를 보여 주었다.
원래 어촌이었던 섬에 상하이의 발전을 상징하는 동방명주탑이 올라가는 그야말로 수직상승의 20년 역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외국의 대학생들에게 공무원은 푸둥의 거침없는 미래상을 늘어놓았다.
질문시간에 필자는 아까 그 어촌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활기 넘친 어조는 사라지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 공무원은 아주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우리가 상하이를 개발하면서 가장 많이 연구한 사례는 서울의 강남이다.
특히 강남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아주 치밀하게 연구했고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푸둥섬의 원래 주민들은 일가친척들이라 내륙지역에 땅을 마련해 같은 지역에 이주시켜 주었다는 대답을 덧붙인 다음 공무원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와 대학생들에게 필자와 공무원이 주고받은 짧은 대화의 의미를 이해했느냐고 물었지만 옳게 대답한 학생은 없었다.
2005년 봄의 일이다.
⊙ 중국 최고의 쇠고집 빌딩이나 대형 쇼핑몰을 지으려면 여러 소유주로부터 땅을 구입해야 한다.
이때 금전적인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상을 지연하면 개발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를 '알박기'라고 한다.
중국에선 한 주민이 무려 3년 동안 알박기로 버틴 적이 있다.
집 둘레에 큰 구덩이가 파이고, 물과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에서도 이주를 거부했다.
법원이 강제철거 명령까지 내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개발업자들은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 파산할 지경이 됐다가 극적으로 협상에 이를 수 있었다.
도심에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를 사주는 조건으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우와 양으로 언론에 소개된 이들 부부는 법원의 퇴거 명령이 내려지고 주변의 집이 모두 헐려 드나들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에도 농성을 풀지 않았다.
집안에 남은 남편에게 밖에 있는 아내가 로프를 이용해 음식을 전달하면서 버텼다.
그 사이 아내는 밖에서 외신들을 만나 사정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