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선학생 해부도
공부는 기대도 하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다행이라는 문제 학생들이 또 집단적으로 말썽을 피웠다.
불려와 한자리에 모인 부모들은 죄인 모양 풀이 죽어 있다.
동변상련,이해하고 위로해줄 사람들은 서로밖에 없다.
그러나 학부모들만 남겨진 공간의 공기는 싸늘하다.
서로에 대한 원망이 폭발 직전이다.
부모들은 하나 같이 우리 아이는 괜찮은데 친구를 잘못 사귀면서 비뚤어졌다고 믿고 있다.
누구 하나 자기 자식이 어쩌면 가장 악랄한 주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친구 꼬임만 아니었다면 부모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이 될 뻔했다는 것.
부모들끼리 논쟁이 시작되자 과거의 이력이 하나둘 밝혀진다.
몇몇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서 전학온 지 얼마 안 된다.
그런데 먼저 학교에서도 자꾸 꼬드기는 질 나쁜 친구들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전학을 결심한 이유도 나쁜 친구들을 피해서다.
학교가 바뀌어도 순진한 아이를 가만 놔두지 않는 세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 부모의 억장은 무너진다.
담당 선생님이나 기관의 공무원들은 이 사태를 전혀 다르게 읽는다.
유혹해오는 친구들을 피해 학교를 여기저기 옮기면서도 문제의 한 가운데 늘 끼여 있다는 그 학생이 사실은 다른 친구를 부추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 학생이라고 아주 쉽게 단정한다.
순진한 학생이 한두 번 꼬임에 넘어가 휩쓸릴 수는 있지만 매번 꼬임에 넘어갔다고 보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학생이 이 학교 저 학교를 옮겨 다니며 불량한 패거리를 주동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간단하다.
같은 반 친구들이나 피해 학생들의 시각은 좀 더 싸늘하다.
주모자나 단순 가담자나 '오십보백보'라고 본다.
탈선을 꼬드기는 학생도,그 꼬임에 넘어가는 학생도 서로 비슷하기에 몰려 다녔다.
단순 가담자로 보이는 학생도 꼬임에 넘어간 게 아니라 누군가 탈선으로 인도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준비된 학생'들이었다는 냉철한 시각이다.
⊙ 폭력영화는 유죄일까? 청소년 폭력이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언론은 폭력영화를 문제 원인의 하나로 지목한다.
간혹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에게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느냐고 물으면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거론하가도 한다.
물론 동일한 영화를 봤던 학생들이 모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