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능력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30명의 학생들에게 아래 그림을 보여주면 20여명의 학생들이 링컨이라고 답한다. 나머지 학생도 링컨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면 어려움 없이 알아본다. 그래도 끝까지 링컨이 아니라고 우기는 학생들도 있다. 우기는 학생이 맞다.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링컨을 알아보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학생들이 어디선가 봤다고 기억하는 링컨의 사진은 사실 이 그림과 비슷하지 않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관계가 별로 없다. 수학적으로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은 링컨의 사진을 입력해 둔 컴퓨터가 이 거친 흑과 백의 덩어리를 그 사진과 유사한 얼굴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뇌가 컴퓨터보다 잘하는 일
만약 인간이 컴퓨터 수준의 지각능력을 갖고 있다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우선 운동장 끝에 서있는 친구를 알아 볼 수 없다. 운동장 끝에 있는 친구의 얼굴이 수정체를 통과해 나의 망막에 맺힐 때 이 그림보다 품질이 좋다고 하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 뇌는 몇 개 안되는 데이터를 짜 맞춰 친구의 얼굴을 바로 알아본다. 컴퓨터처럼 버버벅 소리를 내며 계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기 위해 뇌가 동원됐다는 사실도 자각하기 힘들 지경이다.
전자제품의 디자인은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특히 휴대폰은 종류가 많아 대개 처음 보는 디자인이다. 그래도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 휴대폰을 놓고 '이게 뭐야'라고 묻는 경우는 드물다. 전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도 휴대폰인지 알기 때문이다. 컴퓨터라면 이 세상 모든 휴대폰을 입력해 놓고 문제의 휴대폰과 일일이 대응시켜 봐야 하기 때문에 신형 휴대폰에 대응하는 데이터가 없으면 휴대폰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휴대폰의 공통점에서 추출한 모형을 기준으로 찾기 시작 할 수도 있겠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을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디카를 닮았거나 MP3를 닮았어도 휴대폰은 휴대폰이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인간의 뇌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각은 곧 해석이다
사람은 온통 처음 보는 사물들 속에서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익숙한 것에 둘러싸여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투덜대는 사람의 뇌조차도 새로운 사물을 해석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처음 보는 커피 잔,처음 보는 의자,처음 보는 볼펜,처음 보는 버스,처음 보는 가로수의 잎사귀,처음 보는 선생님의 넥타이,처음 보는 친구의 여드름,그리고 처음 보는 밥,김치,깍두기까지. 차라리 어제도 봤던 그대로의 사물을 오늘도 그 모습 그대로 보는 경우가 극히 예외적이라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그래도 낯선 사물의 홍수 속에서 혼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뇌가 알아서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뇌의 도움을 받아 의자는 아무리 모양이 특이하고 낯설어도 의자로 지각할 수 있고 여드름이 났다고 친구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일은 없다. 이렇게 사소한(?) 정보는 원천봉쇄해주기 때문이다. 뇌가 하는 일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이 정리를 눈에서 한다고 느낀다. 지각과 동시에 해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각은 곧 해석이다.'
◆조상(祖上)의 조건
사냥을 나갔다가 홀로 낙오된 원시인을 상상해보자. 주변의 모든 사물은 위협적이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때 가까운 풀숲에서 맑은 방울소리가 난다. '아 맑은 소리가 나는구나!' 일단 이렇게 지각하는 것이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적이며 냉정한 원시인이라면 자식을 낳을 때까지 살기 어려웠을 테니 우리의 조상은 되기 힘들었을 터. 우리의 조상들은 정체불명의 맑은 소리 앞에서 무조건 도망가고 보는 소심한 족속들이었을 가능성이 반대의 경우보다 크다.
조상의 소심함을 비웃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어린 시절 놀이공원 유령의 집에서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말이다. 어두침침한 전망(前望)에 흩날리는 희뿌연 천을 보고 '어 희뿌연 천이 어디서 나타났지?'라고 담담하게 반응했는가? 아니면 있지도 않은 무덤가의 소복 여인을 상상하며 소리를 질러댔는가? 소리를 질러대거나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면 방울소리에 놀라 도망간 우리 조상님들처럼 당신도 후손들의 조상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