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이번 주부터 세계를 감동시킨 명연설문을 게재합니다.
이들 명문은 역사가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그 참맛이 변하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읽은 명문들은 여러분들의 평생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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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이 연설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 1년2개월 전인 1775년 4월23일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에서 행한 연설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로 유명한 이 연설은 영국의 압정을 폭로, 미국 건국의 씨앗이 됐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을 무력으로 다스리려 했으며 견디다 못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마침내 독립 혁명을 꿈꾼다.
이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패트릭 헨리의 이 연설이다.
당시 헨리는 39세의 변호사로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 의원으로 있었는데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 통했다.
그러나 한때 이 연설의 전문이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학자 간 논쟁이 있어 왔다.
달변가인 헨리가 당시 원고 없이 연설한 데다 의회의 회의록에도 기록되지 않아서이다.
이 연설이 후세에 알려지게 된 것은 헨리가 연설한 지 41년이 지나 윌리엄 워트라는 사람이 헨리의 전기를 쓴 것이 계기가 됐다.
워트는 헨리가 연설하는 현장에 있었던 세인트 조지 터커라는 판사의 기억에 의존해 헨리의 연설을 재구성, 전기에 삽입했다.
⊙ 패트릭 헨리(1736~1789)는 누구인가
미국의 독립혁명 지도자이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났으며 1760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인세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773년 통신위원회를 조직해 영국의 압정을 폭로하고 식민지 혁명을 일으키는 데 밑거름 역할을 많이 했다.
그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장관직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사양하고 고향인 버지니아주 지사만 네 번 연임했다.
그는 또 미국 헌법의 권리 장전 채택에도 공헌이 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 연설문 원문 No man thinks more highly than I do of the patriotism,as well as abilities,of the very worthy gentlemen who have just addressed the hou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