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냉소적 유산
복거일
<소설가·시사평론가>
※ 이 글은 소설가이자 시사평론가인 복거일씨가 9월 21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중요한 사회적 논점에 관해선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바로 그 점이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세종시에 관해선 여론이 그렇게 엇갈리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세종시의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미 상당히 진척된 대규모 사업인데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정은 무얼까.
세종시가 냉소적 계산에서 태어났고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계산이 놓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수도의 충청도 이전'이라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생겨났다.
그의 공약은 충청도의 표를 얻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즉흥적 제안이었고 실제적 바탕이 전혀 없었다.
그의 계산은 들어맞아서,그는 선거에서 이겼고 스스로 "재미 좀 보았다"고 인정했다.
그의 공약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판정되었지만,그는 정부 부처의 일부를 충청도로 옮기는 편법을 추진했고,마침내 17개 부처 가운데 9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처럼 정부 부처를 나누는 것은 수도를 아예 옮기는 방안보다 오히려 못하다.
한곳에 모여 있어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기적 조직을 일부러 쪼개어 다른 지역에 두는 일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지리는 너무 근본적 조건이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 덕분에 지리적 거리가 강요하는 제약은 많이 누그러졌지만,지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공장이든,연구소든,상점이든 한군데 모여서 집단(cluster)을 이루는 현상이 그 점을 잘 말해준다.
반면에 정부 부처를 지방에 두어서 나오는 혜택은 미미하다.
처음부터 수도 이전을 반대해온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지적대로,정부 청사가 들어선 과천시의 역사는 세종시의 앞날을 보여준다.
현재 세종로에는 10개 부처가 그리고 과천에는 7개 부처가 있다.
세종로와 과천은 그리 멀지 않지만,그 작은 거리는 큰 비용과 비효율을 강요한다.
그런 증거들 가운데 하나는 과천 부처마다 세종로 부근에 따로 둔 사무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