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 사회를 떠도는 정체불명의 말들 (1)
“한우고기가 수입산 소고기보다 맛을 좋게 하는 물질 함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은 소고기 맛을 결정하는 물질 함량을 분석한 결과 한우고기가 수입산보다 단맛과 감칠맛을 좌우하는 성분이 많고 신맛과 쓴맛을 내는 성분은 적었다고 밝혔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한우고기의 품질 우수성을 입증한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국내 소고기 시장 개방으로 늘어난 수입 제품과 국내산 한우고기의 맛과 품질 차이를 처음 객관적으로 밝힌 것이기에 여러 언론에서 이 자료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우리말 관점에서는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있는, 부실한 자료였다. ‘수입산’이란 정체불명의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이 수입산보다 좋은 이유’ ‘값비싼 수입산 새우’ ‘국산 대 수입산 맥주 전쟁’…. 우리말에 ‘수입산’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여기저기 가져다 쓰는 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이 세계 각국과 무역협정 협상을 벌이면서 신문에 가장 빈번히 오르내린 용어는 아마도 FTA(자유무역협정)일 것이다. 그와 함께 우리 눈에 익숙해진 표현이 ‘수입산’이다.
하지만 ‘수입산’이란 말은 들여다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미적으로 매우 비논리적인 단어다. ‘-산(産)’은 어디에서 산출되거나 생산된 물건임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한국산, 미국산, 일본산처럼 쓴다. ‘수입산’은 국산 또는 국내산에 대응하는 말로 쓰는 것 같은데, 수입이란 ‘외국의 물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디’를 나타내는 ‘-산’과 어울려 쓸 수 없다. ‘수출산’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
‘국산’에 대응하는 말은 그냥 ‘외국산’일 뿐이다. 이를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로 쓸 수 있다. ‘수입산 새우’라고 하지 않고 ‘수입 새우’라고 하면 충분하다. 국산과 외국산을 비교하려면 ‘한우고기와 수입 소고기’ ‘한우고기와 수입육’ 등 쓸 수 있는 표현이 얼마든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한글학회가 선정한 ‘우리말글 지킴이’ 김선덕 선생은 우리말 발전을 막는 이런 비논리적 표현이 의외로 많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후보직 사퇴’니, ‘가짜박사 행세’니 하는 말도 그런 사례다. ‘후보’란 ‘(선거에서)어떤 직위나 신분을 얻으려고 일정한 자격을 갖춰 나선 사람’을 뜻한다. ‘직’이란 ‘맡은 직위나 직무’를 말한다. ‘여러 직을 두루 거치다’ ‘경비직을 그만뒀다’처럼 쓴다. 후보 자체는 어떤 직위나 직무가 아니다. 그러니 ‘~후보’면 그냥 후보인 것이지 ‘후보직’이란 말은 없다. 아무개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것이고, 물러난다면 ‘국회의원 후보를 사퇴했다’고 하면 된다.
‘가짜박사 행세’도 마찬가지다. ‘행세’란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당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짓’을 말한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하고, 공무원이 아닌데 ‘공무원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박사가 아니면서 박사인 척했다면 그냥 ‘박사 행세’를 한 것이다. ‘가짜박사 행세’를 한 게 아니다.
모두 우리말 진화를 막는 비논리적 표현들이다. 언어를 정교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비논리적일 리 없고, 논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말을 모호하게 쓸 까닭이 없다. 우리말을 얼버무리는, 이런 ‘대충주의’를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지름신'은 impulse buying…'바가지 씌우다'는 rip off
‘나도 몰래 우연히 봄’이 와서 큰맘 먹고 새 노트북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이럴 때 흔히, “지름신(충동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강림하셨다”고 하는데, ‘지름신’은 영어로 impulse buying(충동구매) 혹은 shopping spree(폭풍 쇼핑)이라고 합니다.
네, 오늘은 쇼핑(shopping)과 관련한 표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