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10월 12일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해 8월 3일, 서쪽으로 가는 인도 항로를 개척하러 떠났다가 신대륙, 정확히는 산살바도르섬을 발견한 날이다. 구대륙에 국한됐던 유럽인의 시야가 신대륙 아메리카로 확장된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인이 아닌 데다 1506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로 알았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7년 두 차례 항해한 끝에 그 땅이 유럽인들이 몰랐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신대륙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남긴 업적 하나는 분명하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유럽인의 세계관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웅인가, 침략자인가?
1492년은 스페인이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800년간 벌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해이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당도한 해다. 이후 스페인은 약 200년간 유럽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으로 당시 영국·프랑스가 넘볼 수 없는 부를 축적했다.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에는 축복이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코르테스, 피사로 등이 잇달아 진출해 원주민을 상대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 군대는 총과 대포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발을 딛자 천연두 수두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홍역 백일해 등의 질병이 마치 지옥문이 열리듯 쏟아져 들어왔다. 1억 명으로 추산됐던 원주민은 18세기까지 약 90%가 감소하는 궤멸적인 피해를 봤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해상 팽창
동떨어져 살던 문명 간의 접촉은 다양한 교류와 교환으로 이어진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일어난 생물과 인구의 급격한 이동을 ‘콜럼버스의 교환’이라고 부른다. 1972년 앨프리드 W 크로스비가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라는 저서에서 처음 언급한 용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신세계에는 유럽처럼 가축이 없었고, 원주민이 흩어져 살아 면역력을 개선할 기회가 없어 ‘접촉의 시대’가 더 치명적이었다고 했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대항해시대》에서 지적했듯이 해상 팽창은 환경 차원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대륙이 마냥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염성이 강한 성병인 매독은 거꾸로 유럽을 경악하게 했다. 콜럼버스가 귀환한 1493년 이후 스페인에서부터 매독이 퍼져나가 매독을 ‘신대륙의 복수’로 불렀다.
어쨌거나 질병의 교환에서 신대륙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컸던 것은 구대륙에서 옮겨간 전염병이 물과 공기로 쉽게 전염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매독은 피부나 성 접촉이 있어야만 걸려 전염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다. 오히려 진짜 ‘신대륙의 복수’는 담배를 꼽을 수 있다. 담배는 1558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신대륙 원산지에서 종자를 가져와 재배하면서 유럽에 전해졌다. 이 담배는 지난 500년간 전 세계 수억 명을 니코틴 중독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인류를 기아에서 구한 ‘콜럼버스의 교환’
콜럼버스의 교환이 부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대륙에는 오히려 엄청난 혜택으로 돌아왔다. 신대륙에서만 자라던 옥수수 감자 고구마 강낭콩 땅콩 고추 등이 유럽으로 전해졌다. 특히 감자는 유럽인의 주식 중 하나가 됐다. 감자가 유럽인의 식탁에 올라오면서 감자 의존도가 높아져 생긴 비극이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이다. 1845~1852년 감자가 말라죽는 역병이 돌아 수확을 망치자 아일랜드에서 약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전해진 것도 많다. 밀 쌀 보리 양파 당근 올리브 후추 계피 사과 복숭아 배 바나나 오렌지 레몬 키위 커피 등은 신대륙에 없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 가져온 최대 이점은 인류를 기아에서 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