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버트란트 러셀「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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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버트란트 러셀「게으름에 대한 찬양」

박정호 기자2010.05.17읽기 10원문 보기
#버트란트 러셀#게으름에 대한 찬양#무위도식#노벨 문학상#근면과 성실#삶의 가치관#현대인의 강박관념#일과 여유의 균형

“게을러져라! 자유와 가치의 창조, 즐거움을 얻으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숲에서 있기 숲에서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지만,그 중 가장 기쁘고 빛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조금 걸을 수도 있고, 가로질러 가며 '조깅'을 할 수도 있지만, 그저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나무에 기대는 것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봄의 오후,여름밤,가을 낮,눈 쌓인 겨울,어느 때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곧,마치 첫 키스처럼,조금 내민 나의 얼굴에 그녀의 입술이 다가오듯, 숲이 다가온다. 처음엔 숲의 고요함이 들려오고,다음 새소리가 섞여 귀를 흘러간다.

나무 내음은 이미 나의 온몸을 적시었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를 지나 동전처럼 내게 떨어져 온다. 이때 세상은 한꺼번에 존재한다. 다음 그 존재는 천천히 베일을 벗으며, 내 앞을 흘러간다.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순간,환영처럼 사라져 버렸던 바로 그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덧붙여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꼭 하나 있고,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고,실제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대개는 그것이 우리를 망치고 있다.

전우익 선생의 말처럼,우리는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먹고,죽도록 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데,이렇게 사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도 단 한 가지,'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아무것도 않고서 어찌 밥을 먹을 수 있으리나는 본디 무지 성실한 인간이었다. 다음 같은 사례가 그걸 증명할 것이다. 나는 무식해서 (사전을 뒤지기 전까지는) 무위도식(無爲徒食) - 하는 일 없이 먹고 놀기만 한다-는 말의 '도'를 '도(盜)'로 잘못 알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으니, 하는 일이 없으면, 먹는 것은 '도적질'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버스에 붙어있던 공익광고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저 놈을 매우 치렸다" 하는 호령에도 공감했던 것 같고…. 나야말로 성실과 근면이 일생의 진리요,사람됨의 기초로 알고 살아왔었다. 이런 삶은 아마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열심히 일해야 '굶어죽지 않는다'고 했던 초등학교 선생님 때문인 듯도 하고,"죽으면 썩을 몸, 놀면 무엇할 것이냐?"며 연신 반질반질 깨끗깨끗 집안을 쓸고 닦고,요리하고 빨래하던 어머니 때문인 듯도 하다.

새벽에 일어나 일터에 나가 빗자루질을 하고, 어머니가 하시던 작은 가게를 닫고, 밤늦게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쉬는 날에도 우리들 머리를 손수 깎아주시고는, 밥을 얼른 먹은 다음, 집안 곳곳을 수리하고 방을 넓히곤 하셨더랬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던가),군대에 가고(군대에서는 먹고 놀면 사고친다고,이쪽 산을 깎아 저쪽 구덩이에 메우고,저쪽 땅을 파서 여기에 구릉을 만든다는 곳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몇 군데 '직장'을 다니면서,나는 '무위도식'하는 이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걸인들도 열심히 '구걸'하는 모습으로 내 앞을 지나곤 했던 것이다.

⊙ 러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게으름 찬양 철학자그런데 용감하게도,<게으름에 대한 찬양>,그러니까 <무위에 대한 찬미>를 주장하시는 분이 있었으니,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경이다. 그러나 그가 이루어 놓은 일들을 보면,"하는 일 없이 놀고 먹기만" 해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 일들이니, 그는 하룻동안 평균 3000단어 이상의 글을 썼고,40여권의 책을 냈고, 그 활동으로 인해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좌파, 회의적 무신론자로 규정하고,노년이 될수록 '정치적' 인물이 되어, 평화운동을 하고, 핵무장을 반대하고, 쿠바위기와 중국 · 인도의 국경분쟁에도 개입하였으며,<수학의 원리>를 쓰고, <라이프니츠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설>을 달았고,<서양철학사> 등 역사서도 썼으며,<나는 왜 그리스도가 아닌가>로 종교적인 논쟁을 불지피기도 했던 것이니,그가 말한 '무위'란,우리가 아는 '무위'와는,다른 차원의 무위인 것이다. 러셀의 많은 주장 중 대학 논술고사에 인용된 것은 모두 '무위'에 대한 것인데,그것은 그의 무위가 '모든 창조와 즐거움과 지식에 대한 열망'의 근본인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부유한 사람들로서는 충격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보통 사람의 경우 하루에 15시간 동안 일을 했다. 아이들은 주로 12시간씩 일을 했으며, 어른과 동일한 양을 소화해 내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노동시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지만,늘 일 덕분에 어른들의 음주가 줄고 아이들은 탈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에 가로막혔다. (중략)내가 근로시간이 4시간으로 줄여져야 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저 나머지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4시간의 근로시간을 가지고 기본생활과 편의를 충족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신에게 알맞게 쓰도록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 체제이건 지금보다 교육의 기회를 더 늘려야 하고, 그 교육은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을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지식인인 척하게 만드는 그러한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농민들의 전통 춤은 먼 시골구석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적어도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욕구와 충동은 사람들의 내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인들에게도 즐거움은 수동적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중략)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탐닉할 수 있을 것이며, 화가들은 작품성만을 추구하더라도 굶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작가들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 위한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 돈벌이용 조잡한 대중소설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고, 자신들의 역량과 개성을 잃을 일도 없을 것이다. - 2008 동국대 정시 논술고사, 버트란트 러셀 《무위를 찬미하며》-아,그런 것이었다.

본디 그리스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철학과 학문과,예술은 어디서 나온 것이었는가? 그것은 오이코스,그러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집안 살림을 맡아주던 노예들이 있던 때문이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처럼 매일을 노동해서는 책을 읽고(더 나은 삶이라면 책을 쓰고),음악회에 가고(음악을 연주하고),자신이 매일 물을 주는 식물에 대하여 보다 잘 알 기회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처럼 그렇게 매일 일만 해서는, 분명 당신이 감탄했을 것이 분명한 위대한 건축물들의 설계 원리를 탐구하고, 아이들과 더불어 이국으로 떠날 여행준비를 하며 외국어를 배우고,틈틈이 메모처럼 끼적였던 일기를 엮어 책으로 내는 일을 하실 수도 없었던 것이다. ⊙ 무용한 것이야말로,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다. 먼저 퀴즈 하나. 병원에 많이 심는 나무는? '살구나무'! 왜냐구? 살구 보자구! 러셀도 '무용한 지식'으로 살구나무에 대해서 말한다. "살구는 한왕조 시절 중국에서 수확되다가,인도에서 재배되었고,이란으로 넘어가서, 로마로 전파되었다.

살구(apricot)는 일찍 익는 과일이기 때문에 라틴어 '발육이 빠른'에 해당하는 'precocious'에서 어원을 찾는다"는 것. 나는 살구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언제나 옆사람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이로서 살구는 더 달콤해지고, 햇살은 더 밝게 빛나고,우리들은 한결 더 가까워진다. 러셀에게는 '무용함'이야말로 더할나위 없는 '유용함'이다. 그것은 우리를 보다 가볍게 하고,장난도 치게 만들고,스스로 무엇을 선택할 여지를 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가 해오던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교수들은 안식년을 가지면서,보다 더 넓은 학문적인 확장을 하게 되며, 충전한다. 이제 진공상태는 무엇이고 빨아들이려 한다. '무위'의 시간이야말로 '수확의 계절'이다. 러셀은 이러한 '게으름'의 시간을 사적인 문제로 한정하지 않았다. 이미 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우리 사회, 우리 문명에 대한 조언이며,정책방향인 것이다. 그의 글을 귀담아 들어야 할 곳은 지금,우리,여기 한국사회다. 한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동시에 또 한쪽에서는 '백수백조 청년실업' 사오정(사십오세 정년)들이 실업의 고통을 당하는, 이 '기괴한 양상' 앞에 오래도록 무기력해 있는 우리들 말이다.

생산을 과학적으로 조직하면 현대 세계는 노동력 중의 작은 일부만으로도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지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쟁은 결정적으로 보여 주었다. 당초 사람들을 전투와 군수 노동에 투입할 목적으로 생겨난 그 같은 과학적 조직이 만일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도 모두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옛 혼란으로의 복귀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게 방치되었다.

왜? 일은 의무이므로,사람은 그가 생산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덕에 비례해 임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국가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비참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인하대 2008 논술 모의고사원동업 S · 논술 선임연구원 iskar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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