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로잡아야 세상의 혼란을 잠재울수 있다
⊙ 여전한 공자의 시대 고등학교 도덕이나 윤리교과서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윤리를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들이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를 단지 시험범위가 들어 있는 종이책이라고 생각했다면,이런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그 사실을 알았다면,이제 그런 시도를 비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집단행동'이나 '집단생활'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세대들에게,혹은 각 개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향 없이 제각기 각을 세우고 있는 시대에,'공동체의 회복으로 이 시대의 혼란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모두가 똑같은 발언권을 지니고 자신의 가치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 개인의 가치들을 하나의 공동체에 묶어두려는 시도가 과연 가능하냐는 질문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혼란을 그저 놔두자는 대답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시대적 흐름이 그러하다고,'공동체의 사상들'이 마냥 버려진 자식처럼 우리의 시야를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이야기할 공자의 사상을 포함해 20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을 뚫고 살아남은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빛나는 깨우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그 옛날과 지금의 차이란 고작 혼란의 수가 늘어난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 질서회복,공자의 시대적 사명
공자(BC 552~479)가 살던 시기는 주(周 · BC 1046~771)의 봉건제도가 무너져 내리고 혼란이 극에 달해 있던 춘추전국시대였다.
혈연관계로 굳게 맺어져 있던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혈연성이 흐려지고 상하관계나 위계질서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게 되고,훗날엔 그저 힘이 강한 사람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돌변하게 된다.
공자가 보기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평생에 걸쳐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것이다. (공자의 정식 직업은 지금식으로 말하면 '공무원 양성 학원 경영' 정도 된다.)
공자가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혹은 극복하기 위해 내세운 것은 '정명'(正名)이었다.
즉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고,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악제도가 일어나지 못하고,예악제도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않고,형벌이 알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論語』「子路」3)
공자의 사고의 큰 틀은 정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의 혼란은 사람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이름에 맞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동체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고 그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세상의 혼란이 왔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