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 줄거리] 일자무식에 머슴살이 하던 민시영은 아내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북한산에 사는 월봉대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는다. 10년이 안 돼 월봉대사는 패글제를 가르쳐주며 민시영이 과거에 응시하도록 한다.
곧 앞서 이끌며 몰아내자 따라 들어가 전정(殿庭)에 숙배하니 임금이 물으시기를,(중략)
“그러하다. 내 어젯밤 몽중(夢中)에 어떠한 도사 한 분이 와 날더러 이르기를 ‘패글제는 이러한 글제를 내라.’ 하되 그 연고를 해득지를 못하였더니 이제야 그 부인의 지성을 상제(上帝)께옵서 감응하시어 내 마음을 깨치게 함이라. 또 몽중 도사는 너의 선생 월봉대사요, 글제의 ‘하득제갈량이라.’ 하는 것은 내 시영을 얻을 징조로다. 오호라,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요, 국난(國難)에 사양상(思良相)이라.’ 하였으니 내 나라가 어지러움을 근심함에 또한 양상을 얻었고 네 가빈하니 또 양처를 얻었도다. …”
[가운데 부분 줄거리] 민시영은 사또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나,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걸인 행색으로 집을 찾아간다.
부인 … 허허 길게 탄식하고 돌아 들어와 이불을 덮어쓰고 스스로 하는 말이,
“… 대장부가 아녀자와 더불어 십 년의 기약을 서로 하였는데 저다지 신의 없이 돌아오니 어찌 그러리오? 비록 그러하나 잠깐 용모를 살펴보니 티끌의 때가 없고 정수리에 은은한 정기가 있고, 미간에 아름다운 태도를 감추고 있으니 의관은 남루하나 완연히 진흙 속의 옥이 티끌 밖에 드러나 있도다. 반드시 무슨 거동이 있을 것이라. … 기약을 어겨서 흔연히 받아들이면 이는 반도지폐(半途之廢)가 될 것이니 물리쳐 나중의 모습을 보리라. 고인이 이르기를, 옛날 소진이도 그 아내에게 곤박함을 보고 스스로 공부한 지 삼 년 후에 육국(六國) 상인(相印)을 차고 다시 만났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리라.”
- 작자 미상,「민시영전」-
머슴살이 하던 … 전정(殿庭)에 숙배하니 … 패글제 … 글제의 ‘하득제갈량이라.’
과거(科擧)는 고전 소설에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학문 수양을 하다 출세(出世: 세상에 나가 벼슬을 함)해 입신양명(立身揚名: 세상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위를 확고하게 세워 이름을 떨침)을 이상으로 삼았던 양반에게나, 양반으로 오르기를 소원하는 양인(良人: 양반과 천민의 중간 신분)에게나 과거는 매우 중요했다. 15세 이상이면 소과(小科)에 응시할 수 있고 이에 합격해야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는데, 각각은 초시(初試)를 거쳐야 복시(覆試)를 볼 수 있었다. 소과 초시 합격자를 초시(한문을 좀 아는 유식한 양반을 높여 이르던 말로도 쓰인다)라 하였다.
소과 복시 합격자는 진사, 생원이라 불렸는데, 대과 초시 응시 및 성균관 입학 자격을 받고 하급 관원이 될 수 있었다. 이때 4대가 양반 신분을 유지하는 특권이 주어졌는데, 이는 양반이더라도 4대 안에 최소한 소과 복시 급제자가 안 나오면 신분이 강등되는 것을 의미했기에 과거는 여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과 초시는 성균관 유생과 현직 관료도 응시할 수 있었다. 각 도의 인구 비례로 약 240명을 선발했는데, 그들이 예조에서 실시하는 대과 복시에 응시해 33명의 선발 인원에 들면 임금 앞에서 대과 전시(殿試)를 치러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의 순위를 다퉜다.
흔히 말하는 장원급제(壯元及第)는 갑과 1등이다. 33명은 품계를 수여받고(장원 종6품, 갑과 정7품, 을과 정8품, 병과 정9품), 그 중에 현직 관원일 경우 1~4계(階)의 승진을 한다. 전시는 시국 문제에 대한 국왕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치러진다.
이 작품도 과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머슴살이’ 하던 주인공은 양인인 듯하다. 머슴은 주로 농가에 고용돼 그 집의 농사일과 잡일을 해주고 대가를 받는 사내로, 노비는 아니다. 노비는 과거를 볼 수 없었다. ‘전정(殿庭: 궁전 뜰)에 숙배(肅拜: 백성들이 왕이나 왕족에게 절을 하던 일)’하고, (패)글제(과거의 문제, ‘시제’라고도 한다)가 ‘하득제갈량(何得諸葛亮: 제갈량과 같은 인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인 것을 보면 주인공이 치른 과거는 전시다. 조선 후기에 소과를 거치지 않고 대과를 응시하는 것이 늘었고 별시(別試: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던 임시 과거)라 해도, 민시영이 초시나 복시를 거치지 않고 전시에 곧바로 응시하는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