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緣分)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평생(平生)애 원(願)하요데 한데 녜쟈 하얏더니 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엇그제 님을 뫼셔 광한뎐(廣寒殿)의 올낫더니 그 더데 엇디하야 하계(下界)예 나려오니 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삼 년일쇠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텹텹(疊疊)이 싸혀 이셔 짓느니 한숨이오 디느니 눈믈이라 인생(人生)은 유한(有限)한데 시름도 그지업다 무심(無心)한 셰월(歲月)은 믈 흐르듯 하는고야 염냥(炎凉)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동풍이 건듯 부러 젹셜(積雪)을 헤텨 내니 창(窓) 밧긔 심근 매화(梅花)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황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 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매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데 보내오져 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 정철, 사미인곡 -
님을 조차 삼기시니 … 님을 뫼셔 …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 달
조선 시대에는 남녀가 유별하였다. 남녀를 분별, 즉 구별하여 나눴던 것이다. 말이 분별이지 그것은 차별에 가까워서, 여자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이를 고려하면 시적 화자 ‘나’는 여자이고 ‘님’은 남자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님을 조차(좇아) 삼기(‘삼기다’는 생기게 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게 된 존재이고, ‘님을 뫼시’고 있었다. ‘나’는 임에 종속되고 임은 ‘나’보다 높은 존재인 것이다. ‘나’가 여자임의 결정적 근거는 ‘연지분’이다. ‘연지’는 화장할 때에 입술이나 뺨에 찍는 붉은 빛깔의 염료이고, ‘분’은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밝은 살색이나 흰색의 가루이다. 이것이 옆에 있다는 것은 ‘나’가 여인임을 뒷받침한다. 한편 이 시가에는 임이 ‘달’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또한 임이 남자임을 느끼게 한다. 달은 하늘에 있기에, ‘나’는 그것을 우러러봐야 한다. 이는 여자들이 남자들을 떠받들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투영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 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 실음 … 한숨… 눈믈… 시름
그러런데 이 시가는 남자인 정철이 지었다. 그는 왜 시적 화자를 여자로 설정한 것일까?
‘나’는 ‘외오(외따로 떨어져) 두’어진, 즉 버림받은 상태에 있다. 그런데 ‘므스 일로 … 그리는고’라고 한 것을 보면 자신이 왜 실연당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만약 ‘나’가 어떤 잘못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시가 어디에도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짐작이 가는 것이 있기는 하다. ‘나’가 ‘졈어 잇(젊어 있)’었을 때는 임이 ‘나’를 ‘괴(‘괴다’는 사랑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시’었다. 그런데 ‘나’는 ‘늙거(늙어)’ 있는 상태에서 홀로 있게 된다. 이를 보면 ‘나’는 나이 들어 버림받았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늙은 것이 정말 잘못일까? 요즘의 가치관이라면 ‘어찌 이럴 수가 ….’ 하면서 억울하고 분개할 것이다. 물론 ‘므스 일로 … 그리는고’를 임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실음(‘설움’의 방언 또는 ‘시름’으로 풀이 된다)’, ‘한숨’, ‘눈믈’, ‘시름’ 등으로 지낸다. 쫓아가 잘잘못을 따지며 머리채를 쥐어뜯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바보같이 슬픔 속에 지내고만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가를 조선의 잣대로 먼저 봐야 할 것이다. 조선에서 여자는 남자들이 어찌했든 순종해야만 했다.
이제 왜 이 시가의 시적 화자가 여자인지를 알겠는가? 만약 시적 화자가 남자였다면 당시 독자들은 이 시가를 보며 ‘이런 남자가 어딨어?’ 하고 웃었을 것이다. 이렇듯 시적 화자의 성격과 정서를 사회 문화적 배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늘 모를 일이런가 …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 눌 위하야 고이 할고 …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 님이신가 아니신가 … 엇더타 너기실고
‘밥 먹었니?’는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해야 하는 판정 의문문이고, ‘뭐 먹었니?’는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설명 의문문이다. ‘밥 하나 못 사줄까?’는 밥을 사 줄 수 있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설의적 의문문이고, ‘밥 같이 먹을래?’는 밥 같이 먹자는 청유·명령 의문문이며, ‘밥을 먹었다고?’는 놀라움 또는 질책 등의 마음을 전하는 감탄(영탄) 의문문이다. 판정 의문문이나 설명 의문문이라 하더라도 문학 작품에서 설의, 청유·명령, 감탄 등의 효과를 낼 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