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효종 때 김생이라는 선비는 길가에서 영영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영영을 만날 궁리를 하던 김생은 영영의 이모인 노파에게 가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
노파는 김생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도련님은 그 애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요?”
“그 애는 회산군(檜山君)의 시녀입니다. 궁중에서 나고 자라 문밖을 나서지 못합니다.” <중략>
“영영은 자태가 곱고 음률이나 글에도 능통해 회산군께서 첩으로 삼으려 하신답니다. 다만 그 부인의 투기가 두려워 뜻대로 못할 뿐이랍니다.”
김생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였다.
“결국 하늘이 나를 죽게 하는구나!”
노파는 김생의 병이 깊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중략>
“단오가 한 달이 남았으니 그때 다시 작은 제사상을 벌이고 부인에게 영아를 보내 주십사고 청하면 그리될 수도 있습니다.”
김생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할머니 말대로 된다면 인간의 오월 오일은 곧 천상의 칠석이오.”
김생과 노파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영영을 불러낼 계획을 세웠다. <중략>
영영을 그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두 배나 더 간절하였다. 그러나 청조가 오지 않으니 소식을 전하기 어렵고, 흰기러기는 오래도록 끊기어 편지를 전할 길도 없었다. 끊어진 거문고 줄은 다시 맬 수가 없고 깨어진 거울은 다시 합칠 수가 없으니, 가슴을 졸이며 근심을 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운데 부분의 줄거리] 병이 든 김생을 찾아온 친구, 이정자는 김생의 자초지종을 듣고 자신의 고모이기도 한 회산군의 부인을 찾아가 영영을 김생에게 보낼 것을 부탁한다.
부인은 곧바로 영영을 김생의 집으로 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꿈에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이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생은 기운을 차려 다시 깨어나고, 수일 후에는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김생은 공명(功名)을 사양하고, 영영과 더불어 평생을 해로하였다.
작가 미상 <영영전>
명나라 효종 때, 김생이라는 선비…영영
조선시대의 고전소설에서 공간적·시간적 배경은 조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역시 ‘명나라 효종 때’가 배경인데, 그렇다고 이 작품이 중국 소설은 아니다. 단지 배경을 그렇게 설정한 것일 뿐, 엄연히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다. 등장인물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김생’에서 ‘-생’은 ‘젊은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서, 고전소설의 남자 주인공에게 흔히 붙여진다. 선비의 나라인 조선에서 그런 등장인물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영영’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기는 하나 그녀가 ‘회산군의 시녀’ 즉 궁녀임을 감안하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군(君)’은 고려·조선 시대에, 왕자나 왕의 종친·외척 및 공신에게 내리던 작위이다). 결국 배경은 중국이지만 인물과 사건은 우리의 것인 셈이다.
길가에서 영영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노파 …그 애는 회산군(檜山君)의 시녀입니다. …병이 든 김생 …이정자 …부인
조선은 유교적 이념이 지배했기 때문에 남녀의 자유 연애가 불가능했다. 결혼은 집안끼리 중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법도였으니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이성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만나려 드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인간 욕망을 대리 만족시키는 기능을 하니, 이 작품에서처럼 ‘길가’에서 본 여인을 사랑한다는 설정은 옛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애가 없는 사랑은 재미없는 법! 회산군이 첩으로 삼으려 하는 ‘영영’은 아무나 사랑할 수 없는 신분인데, 이는 둘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제약이 아닐 수 없다. 궁녀는 오로지 주인을 섬기며 결혼도 못하고, 죽어야만 궁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장애물에 부딪힌 등장인물이 병에 빠진다는 설정이 고전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를 상사병(相思病)이라 하는데,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병이지만, 고전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병이니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