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여자란 이유로 시대가 가로막은 예술가의 꿈…낭패를 낭만으로 바꾼건 깨어있는 누군가의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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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자란 이유로 시대가 가로막은 예술가의 꿈…낭패를 낭만으로 바꾼건 깨어있는 누군가의 후원

정소람 기자2022.05.12읽기 5원문 보기
#유한계급론#과시 소비#공공재#비경합성#비배제성#재산권#후원#성별 차별

(95) 작은아씨들 (上)

“여자는 사랑이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조(시얼샤 로넌 분)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의 평범한 집에서 나고 자란 천방지축 소녀다. 아버지는 전쟁터로 떠나 없지만, 네 자매가 사는 조의 집은 늘 시끌벅적하다. 멋을 낼 줄도, 이성과 어울릴 줄도 모르며 ‘선머슴’처럼 살던 그는 언니 메그(에마 왓슨 분)에게 등 떠밀려 간 사교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 부잣집 청년 로리(티모테 샬라메 분)와 급격히 가까워진다.2020년 개봉한 영화 ‘작은아씨들’은 1968년 출판된 고전 소설(원작명 《Little woman》)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네 자매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 이 소설은 1933년부터 아홉 번이나 영화로 리메이크돼 개봉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재개봉된 영화 역시 19세기 여성의 삶과 당시의 경제적 배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다. 네 자매는 왜 예술인을 꿈꿨나네 자매는 예술적 재능이 남다르다. 메그는 배우를 꿈꾸고, 조는 작가 지망생이다.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분)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분)는 각각 음악가와 화가를 꿈꾼다. 하지만 이들을 돕는 대고모(메릴 스트리프 분)는 부잣집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을 종용한다. “창녀나 배우가 아니면 여자는 돈을 벌 길이 없다”면서.실제 영화의 배경인 19세기까지 대부분 나라에서 여성은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여성은 재산권을 얻지 못했고, 기혼 여성은 ‘남편의 소유’로 인정됐다.이런 탓에 여성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방법은 성공한 배우나 예술가가 되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마저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조가 남성인 친구의 이름으로 책을 내 돈을 버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반대로 로리와 그의 할아버지 로렌스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지만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산다.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은 1899년 《유한계급론》에서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을 ‘유한계급’으로 정의했다. 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명예를 주로 추구하는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베블런은 인간이 ‘소유권’을 가지게 되면서 유한계급이 나타났다고 봤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유한계급은 남성의 영역이 됐다는 설명이다.네 자매는 로리와 연극 소모임을 하면서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이들은 자주 로리의 집으로 향한다. 거대한 서재와 대형 피아노가 있는 집은 자매에게는 꿈 같은 공간이다. 첫째 메그는 그곳에서 만난 로리의 과외 교사와 사랑에 빠진다. 로리는 조를 짝사랑하지만, 마음을 숨긴 채 친구처럼 지낸다. 예술에 후원이 필요한 이유는가난 탓에 꿈에 다가가기 쉽지 않던 자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로렌스는 음악에 열정이 있는 베스를 위해 피아노를 선물한다. 재력가 대고모도 프랑스로 떠나며 에이미를 데려간다. 지원해줄 테니 예술의 본고장에서 배워 성공하라는 주문이었다.이들은 왜 빈손이던 예술가 지망생 자매를 지원했을까. 물론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유한계급론’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과시 소비’를 통해 부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대표적 대상이 예술이었다. 중세 이후 예술가들은 대부분 유한계급의 후원을 받아 성장했고, 이 때문에 당시 미술과 음악 건축 분야가 급격히 발전했다는 해석이 많다. 귀족이 가난한 화가를 후원하고 그 대신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초상화가 작품으로 남은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유한계급 대신 정부나 기업이 예술을 후원한다. 경제학적으로는 예술에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표>를 보면 공공재는 비경합성(사용 시 경합이 생기지 않는 특성)과 비배제성(사용 시 누군가를 배제할 수 없는 특성)을 갖는다. 수익을 내기 어렵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재화인 경우 대부분 정부 예산이나 기업 지원 등을 통해 운영된다.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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