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가 敵으로… ‘금융제국’ 키운 파트너의 얄궂은 운명
세기의 라이벌

후계자가 敵으로… ‘금융제국’ 키운 파트너의 얄궂은 운명

박정호 기자2011.10.27읽기 8원문 보기
#씨티그룹#JP모건체이스#샌디 웨일#제이미 다이먼#금융위기#은행 인수합병#CEO#뱅크원

샌디 웨일-제이미 다이먼

“당신은 해고야!”1998년 11월,뉴욕 아몽크의 씨티그룹 본사. 그룹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샌디 웨일(Sandy Weill)은 유력한 후계자였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다이먼은 웨일이 키웠으며 웨일의 오른팔이었다. 웨일이 다이먼을 내쫓은 것은 씨티그룹이 세계 1위에 등극하며 ‘제국’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이었다. 원인은 댄스파티였다. 웨일은 약 1년 전부터 다이먼이 자신의 딸이 승진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에 마음이 상해 있었다. 때문에 다이먼은 웨일과 16년 동안 한 팀으로 움직이며 많은 성과를 냈지만, 새로 생긴 제국에서 지분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그와 함께 씨티그룹 계열사 살로먼스미스바니의 CEO를 나눠 맡고 있던 영국인 데릭 모건은 그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이 무렵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그린브라이어 휴양지에서 열린 중역회의 댄스파티에서 다이먼의 친한 친구인 스미스바니의 스티브 블랙이 모건 부부에게 춤을 청했다. 하지만 모건은 블랙의 아내와 파트너가 되기를 거부했다. 블랙이 노발대발하자,다이먼은 모건에게 물었다. “블랙의 아내를 모욕하려던 거야? 아니야? 어느 쪽이야?” 모건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다이먼은 이에 격분해 모건을 잡아챘고, 연미복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

웨일과 존 리드(당시 씨티그룹 공동 CEO)는 이 일을 문제 삼아 그를 뉴욕으로 불러 해고했다. 사소한 다툼처럼 보이지만 이날의 댄스파티는 그로부터 10년 후,씨티그룹이 JP모건과 깊은 라이벌 관계가 된 계기였다.

세계1등 은행은 어디인가영국의 더뱅커(The Banker)지는 해마다 세계 1000대 은행 순위를 매긴다. 2009년 7월, 이 잡지는 세계 1위 은행은 JP모건체이스라고 발표했다. 2위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3위는 씨티그룹이었다. 2008년 발표까지 4위에 머물렀던 JP모건체이스는 금융위기가 닥친 후 휘청이는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WaMu)을 인수하며 단숨에 1위를 차지했다. 반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1위였던 씨티그룹은 2006년 들어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자리를 내주며 2위로 물러앉았고 금융위기 후 4위로 내려갔다.

씨티그룹은 지금 비크람 판디트가 이끌고 있지만, 씨티를 건설하고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든 ‘얼굴’은 2003년 1월까지 그룹을 이끈 웨일이다. 씨티의 아성을 구축한 웨일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한때 후계자였던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이다. 그는 씨티에서 쫓겨난 후 미국 5위 은행인 뱅크원의 CEO가 됐다. 씨티그룹 사람들을 영입해 2000년 취임 당시 5억1100만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던 은행을 2002년 22억달러 흑자로 바꿨다. 뱅크원 본사가 미국 중서부 시카고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은행을 ‘씨티그룹 웨스트(서쪽의 씨티그룹)’라고 불렀다.

뱅크원은 2004년 훨씬 덩치가 큰 JP모건체이스와 합병했고 JP모건은 다이먼을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했다. 다이먼은 취임사에서 웨일의 축하 전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당신은 내 라이벌이야.”

"재밌게 살자"던 웨일지금은 라이벌 회사의 수장이지만, 다이먼은 웨일의 수제자다. 둘은 서로 멘토와 멘티 관계였고, 선구자와 후계자였으며, 최고의 파트너였다. 나중엔 거의 부부 비슷했다. 늘 서로 바보, 머저리라며 욕지거리를 섞어 외치며 싸웠고 그러다가 금세 죽이 맞았다. 둘의 만남은 1970년대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웨일은 다이먼의 아버지가 톱 브로커로 일하고 있던 증권회사 시어슨 해밀을 인수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회사 사장님’이었던 셈이다. 다이먼은 터프츠대 재학 시절 시어슨의 인수과정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웨일에게 보여줬다.

웨일은 “이 논문을 우리 직원들에게 보여줘도 될까”라고 물었고, 다이먼은 “물론이죠, 대신 제게 여름 아르바이트를 좀 주실래요” 하고 답했다. 이후 다이먼은 모든 진로를 그와 상담했다. 1982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을 졸업한 25세의 다이먼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에서 취직 제의를 받았지만 “재밌게 살자”며 꾀는 49세의 웨일을 따라갔다. 그가 인수한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X)의 어시스턴트 자리였다. 웨일은 198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다. 다이먼은 첫 딸을 낳은 지 1주일 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반 사표를 제출했다.

웨일은 후에 “그(다이먼)는 실업자에게 자기 인생을 걸었던 거야”라고 표현했다.

전략가와 관리자웨일은 ‘인수·합병(M&A)의 달인’이자 ‘전략가’였다. 그는 1985년 3억4000만달러 손실이 나서 배당 재원이 다 떨어진 BoA에 10억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고 CEO가 되겠다고 제안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다. 하지만 이 대담한 시도는 그를 금세 월스트리트의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1986년 포천지는 웨일에 관해 대문짝 만한 기사를 싣고 “그가 원하는 회사는 규모가 크고 문제가 있는 회사들”이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이후 13년간 엄청난 추진력으로 월가의 금융회사를 차례로 인수했다. 꿩(BoA) 대신 닭으로 볼티모어에서 컴퓨터 제조업체 컨트롤데이터가 갖고 있던 금융회사 커머셜크레디트를 인수(1986)했다.

커머셜크레디트는 프라이메리카를 샀고(1988), 프라이메리카는 트래블러스인슈어런스를 샀다(1993). 트래블러스는 살로먼브러더스를 인수(1997)했고, 다시 씨티코프를 합병(1998)했다. 세계 1위 금융공룡의 탄생이었다. 웨일은 퉁명스런 얼굴로 시가를 피워대는 사람이었다. 일이 끊겼을 때는 마티니를 마시며 오후 내내 낮잠을 자곤 했다. 반면 다이먼은 숫자에 강한 관리자 타입이었다. 깔끔한 슈트를 차려 입고 은색 눈동자를 빛내는 월가의 신사 스타일로, 경비를 아끼려 사무실 신문 구독 부수를 줄이는 식의 구두쇠였다. 하지만 가끔 냉정을 잃었다. 다혈질인 면모가 없었다면 둘이 그렇게 죽이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금융위기, 다이먼의 손을 들다웨일은 70세가 되던 2003년 씨티그룹을 떠났다. 나이가 문제였다기보다는 2002년 주식시장 폭락 여파가 컸던 탓이다. 찰스 프린스가 그 뒤를 이었지만, ‘골리앗’ 씨티그룹은 세가 차츰 약해졌다. 특히 금융위기는 결정타였다. 씨티그룹은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JP모건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2000년대 후반 내내 승승장구한 JP모건은 2008년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베어스턴스 인수에 성공했다. 시장은 “다이먼이 홈런을 쳤다”고 평했다. 최근 월가 점령 시위대가 주요 공격 목표로 다이먼을 꼽고 있지만 2008년까지만 해도 다이먼에겐 ‘월가의 소방관’이라는 애칭이 붙어다녔다. 대규모 M&A 딜로 금융위기가 더 커지는 것을 진화했다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국민들에게 가장 덜 미움받는 금융인’이라는 평도 있다. 두 사람은 현직에서 다시 맞부딪칠 일이 없다. 다이먼은 아직 젊다. 그의 비즈니스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웨일은 이제 카네기홀 의장 등 사회공헌 사업에 힘쓰며 사는 은퇴한 금융인이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건설한 금융제국 간의 세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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