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원 확보 경쟁은 통상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정치·외교전(戰)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극단적으로 충돌할 경우에는 전쟁으로 발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1,2차 세계대전부터 최근의 각종 분쟁들의 원인을 찾아보면 '자원'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란 공통 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벌어진 걸프전쟁이나 최근 이라크전쟁도 마찬가지다.
자원 전쟁은 미국과 영국 등 전통적인 강대국들과 중동 산유국들 간의 싸움이 본류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중국 일본 등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21세기 문명의 주도권도 석유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검은 황금'(black gold)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전 세계적인 판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1,2차 세계대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도 사실은 석유자원 확보를 둘러싼 에너지 전쟁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1차대전은 식민지 자원을 독식한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과 뒤늦게 자원 확보전에 뛰어든 후발 제국주의 국가 간의 싸움이었다.
1900년께 열강의 세계 분할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후발국인 독일은 비잔티움과 바그다드 간 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이를 베를린과 연결,자원 수송 라인을 구축하려는 이른바 3B정책을 강력 추진했다.
이는 케이프타운과 카이로,인도 콜카타를 잇는 영국의 3C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독일은 또 모로코의 광산자원과 무역 기회를 놓고 프랑스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런 대결 상황이 1차대전의 포화를 불러왔다는 설명이다.
2차대전의 과정에는 석유 문제가 직접 등장한다.
독일은 1939년 개전과 동시에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점령하고 1942~1943년 북아프리카 유전지대를 확보했다.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이 독일과 일본 등 추축국에 대해 석유금수 조치를 취한 것(1940년)이 직접적 계기였다.
미국 동인도제도에 석유를 의존하던 일본도 석유 위기를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유전지대로부터 일본 열도에 이르는 석유 수송선을 지키려고 진주만을 침공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됐다는 것이다.
◆중동분쟁
각종 중동분쟁도 이 지역 석유를 확보하려는 '서구 열강-석유 메이저 연합'과 석유 국유화를 시도한 아랍 국가 간 대립에서 비롯했다.
1950년대 초 이란의 모사데그 총리가 유전을 국유화했을 때 미국과 영국이 연합해 모사데그 정권을 전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제4차 중동전이 벌어졌을 당시에는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었고 아랍국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대미 석유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석유 가격은 같은 해 10월 배럴당 5.4달러에서 두 달 이후 17달러로 폭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