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주요섭 '사랑손님과 어머니'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1) 주요섭 '사랑손님과 어머니'

생글생글2017.05.03읽기 5원문 보기
#일제강점기#모성애#사회적 낙인#재혼 금기#내외법#신분제#시대상#가부장제

딸 생각에

혼자 살기로 결심한 24살 과부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는 사랑손님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옥희

세 사람 모두 아쉬움과 아픔…

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읽어보라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몇 번을 봐도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읽다가 책을 덮을 때쯤 가슴에 아릿한 아픔이 고이는 것도 똑같다. 주요섭이 34세였던 193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라는 거친 역사보다 우리 고유의 풍습과 시대상을 읽을 수 있어 소중하다.명작이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읽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엮어가는 이 작품은 감상 포인트가 다양하다. 영악해 보이지만 어린아이인 화자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시침 뚝 떼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상상력을 폭발시킨다.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편을 잃은 스물네 살 과부 옥희 어머니의 입장이 되고 보면 화병이 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두고 떠나는 남자가 되면 가슴이 무지근해질 듯하다. ‘비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암울한 시대에도 사랑은 꽃피기 마련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보여주는 사랑은 모성애와 이뤄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이라는 두 줄기가 교차하며 나타난다.

주요섭 아빠 얼굴을 본 적 없지만 옥희는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어느 날 외삼촌이 머물고 있는 사랑채에 하숙생이 들어온다. 큰외삼촌의 친구이자 옥희 아버지의 옛 친구가 동네 학교 교사로 부임한 것이다. 안채의 옥희 어머니와 사랑채의 선생님은 마주칠 일이 없다. 밥상은 외삼촌이 나르고 자잘한 심부름은 옥희가 한다. 여섯 살 난 옥희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을 구별하지 못한 채 양쪽에 마구 전하고, 정보를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지어내서 사랑지수를 증폭시키게 만든다.작가가 ‘옥희 메신저’를 어떻게 활용하여 사랑을 확장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지,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어떤 식으로 조정하는지, 잘 살펴보면 소설작법을 저절로 익힐 수 있다.옥희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감정이 미묘하게 얽히기 시작할 때 옥희가 유치원에서 가지고 온 꽃을 아저씨가 줬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는 뚜껑을 닫아두었던 풍금을 열어 연주를 하고, 사랑손님은 밥값을 넣은 봉투에 쪽지를 동봉한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손수건에 ‘발각발각하는 종이’를 넣어 옥희 손에 들려 보낸다. 얼마 후 사랑손님이 떠날 때 그가 쓴 편지와 어머니의 답장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길에서 마주친 유치원 동무들이 “옥희가 아빠하고 어디 갔다 온다”고 했을 때 아저씨가 정말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옥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굴이 자주 새빨갛게 되었던 어머니가 장롱에서 아버지 옷을 꺼내 손으로 쓸어보며 “옥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때 창창한 세월 생각에 괜스레 독자들의 가슴이 답답해진다.사랑보다 ‘시선’이 중요했던 시대

‘소설은 또 다른 역사책이다’라는 말대로 이 소설에도 당시 시대상이 잘 드러나 있다. 옥희가 “아빠 하나 있으문”이라는 희망을 말할 때 어머니는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받고. 옥희는 커서 시집두 훌륭한 데 못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라며 눈물을 삼킨다. 이혼과 재혼이 자유롭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는 지금 이 소설을 읽으면 참으로 생경스러울 것이다.사랑채 심부름을 도맡게 된 외삼촌이 툴툴거리는 말을 보면 어머니가 지나치게 자신을 억제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외출하려던 외삼촌은 상을 내가야 하는데 나가면 어떡하냐고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누님이 좀 상을 들고 나가구료. 요새 세상에 내외합니까?”라고 말한다.《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어 여러 차례 상영되었다. 옥희의 장래를 생각하며 평생을 혼자 살기로 결심하는 스물네 살의 과부,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는 사랑손님,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옥희. 세 사람 모두에게 아쉬움과 아픔을 안긴 채 끝 맺은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지금도 우리들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지기 때문일 게다.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오늘날과 똑같은 200년 전의 달콤 살벌한 사랑과 삶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오늘날과 똑같은 200년 전의 달콤 살벌한 사랑과 삶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200년 전 영국 사회에서 결혼을 둘러싼 청춘남녀의 치열한 눈치작전을 그린 작품으로, 돈과 외모가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당시 상황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 현대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다. 특히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히며 현명한 선택을 하는 인물로, 이 소설은 판단력을 확장시키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고전이다.

2021.04.29

인류 보편가치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
커버스토리

인류 보편가치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다양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간의 목숨을 빼앗거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관습까지 용인하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인권 존중, 인간의 존엄성, 비폭력 등 인류 보편의 가치는 어떤 문화와 시대에서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2008.06.11

전근대사회 신분 구분의 첫 기준은 '냄새'
세계를 바꾼 순간들

전근대사회 신분 구분의 첫 기준은 '냄새'

전근대사회에서 신분을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은 의복이나 장식품이 아닌 '냄새'였다. 옷으로 겉모습을 감출 수 있어도 몸에 밴 냄새는 쉽게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배층은 '향기', 천민은 '악취'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인간이 4000여 가지 냄새를 구별할 수 있고, 냄새가 기억과 결합하면 강한 각인 효과를 일으키는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역사 기록에서도 신분 구분의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2025.05.29

소·말보다 못했던 노비의 '몸값'
세계를 바꾼 순간들

소·말보다 못했던 노비의 '몸값'

조선시대 노비는 인구의 40%까지 차지했으며, 법적으로 토지나 가축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말이나 소보다도 낮은 몸값으로 거래되었다. 1398년 노비의 값은 오승포 150필로 말 한 마리(400~500필)의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이후 조금 상승했지만 여전히 동물보다 싼 값에 불과했다. 노비가 양인이 되는 길은 거의 없었고, 가능하더라도 상당한 재산을 바쳐야 하며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2025.11.20

백성 절반이상 노비·천민…사대부를 위한 나라… 민낯 드러낸 조선의 역사, 그 불편한 이야기
Book&Movie

백성 절반이상 노비·천민…사대부를 위한 나라… 민낯 드러낸 조선의 역사, 그 불편한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은 왕을 감시하기 위한 사대부들의 견제장치였으며, 조선은 소수 양반이 다수 노비와 천민을 지배하는 신분제 국가였다. 저자는 조선이 도덕국가가 아닌 도적국가였으며, 같은 민족을 절반 이상 노비로 부린 조선의 못된 정신이 현대 한국 사회의 신분 차별과 직업 차별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2014.12.11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