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아담한 베트남 여인을 닮은 집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를 몇 번인가 지나쳤던가.
누군가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바다 냄새를 잔뜩 물고 들어왔다.
어두운 밤에 냄새만으로 느끼는 하롱베이의 신비스러움, 보인느 건, 파도 치지 않는 바다와 띄엄띄엄 서 있는 작은 섬뿐이었다.
하롱베이의 아침은 구름을 잔뜩 안은, 신나는 하늘을 몰고 왔다.
일행을 태운 정크선은 뚜두두두, 소리를 내며 네 시간의 유람을 시작한다.
하늘이 흐려 하롱베이는 시간이 멈춰 버린 수묵화같다.
1994년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록된 이 곳은 이름을 갖고 있는 섬이 1600여개이고, 이름을 갖지 못한 섬이 또 그만큼 많다고 한다.
이 섬, 저 섬에 이름을 지어 보고 불러 주니, 어느새 낯설던 섬들이 정답게 다가온다.
하롱! 용이 내려온 자리.
1000년도 더 전, 몽골군이 베트남을 침략하였을 때, 베트남의 수호신이 되어 주었다는 곳.
바다 지형을 잘 모르던 몽골군은 이 곳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롱베이를 수호신이라 믿고 있다.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3000개의 작은 섬이 마치 미로처럼 흩어져 신의 마법이 통할만하다.
초록색 바다 위에 조그만 조각배 하나 던져 두고, 빨갛고 노란 과일을 파는 향기로운 미소의 아가씨!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곳에 사는 수상족은 공산 정권에 반대했던 옛 관리의 후손이라 하여 육지에 오르지 못하고 호적에도 봇 올라 있단다.
그녀처럼 작고 노란 바나나를 사면서 사진을 함께 찍자고 청했다.
그리고 가만히 팔짱을 낀다.
그녀도 알고 있을까.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은 이방인의 마음을….
조각배를 보니, 영화 '인도차이나'가 떠오른다.
인도차이나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난 카미유와 프랑스인 장교 장의 사랑과 시대의 아픔을 담은 영화.
사랑을 얻기 위해 시작한 카미유의 여행은 인도차이나인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의 삶은 참담하지만 아름답고 또 강하다.
인도차이나의 아픈 역사와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담았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된 카미유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이 조각배를 타고 바람에 실려와 닿은 곳, 나는 지금 바로 그 하롱베이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