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호 2010년도 한양대학교 수시 기출문제 문제해설과 예시답안
이주 노동자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민자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세계화 시대란 ‘무기준’의 시대이므로 굳이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국가나 사회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먹고 사는 것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자리의 침범 자체를 놓고 따지기엔 이미 저임금 노동을 견딜 선진국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들은 오히려 고마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고통>에 관한 것이지요.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는 이미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공존해 왔습니다.
왜 내게 그다지 경제적 손해를 가져다 주는 사람들도 아닌데, 그토록 민감하게 구는 것일까요?
물론 단순히 범죄율의 증가와 같은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더욱 강한 전통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관계>에서 나오는 불편함 때문이지요.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용적인 성격의 사람은 고집이 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다보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기 일쑤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강한’ 전통의 문화들이 유독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문화란 고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고유한 문화가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쪽에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것이, 사람들은 참기 싫은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들을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것이지요.
내 것을 포기하기 싫은 것처럼, 상대방도 자신의 것을 포기하기 싫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다문화주의, 문화의 다양성 때문에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니 좀처럼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 문제에서는 이것을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좁은 프랑스와 영국인의 자부심> 정도로 치부하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우열을 떠나서 <이런 불편함을 나혼자 감수해야 하는 억울함>의 속사정이 숨어있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