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항 1의 논제 2번 문제 풀이 지난 시간에 이어 서울대의 문항 1번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2번 논제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논제 2. 주민들이 원거주지에서 살기 어렵게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들어 논하시오.>입니다. 그리고 논제1을 통해서 그곳에서 살기 어렵게 된 이유가 자연환경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나누어진다고 설명드렸지요. 그렇다면 이 중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는 학생 본인이 직접 어느 것이 더 명확한 이유라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물론 논리적이어야 하지요. 어차피 더 큰 이유가 된 것이 무엇이라는 답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라, 그래도 이 문제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니에요? 요새 논술 문제는 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하던 데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논제를 잘 살펴보세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들어>라고 되어 있지요. ‘생각’이라는 단어는 논제에서 함부로 쓰이는 것이 아니지요. 자기 생각을 쓰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나는 생각한다’와 같은 표현을 써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그 뒤의 조건 역시 <논하시오>입니다. 1번의 논제가 ‘설명하시오’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이 부분에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더 붙이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자, 그럼 다시 문제로 돌아가보지요.
다소 많은 학생들이 ‘가장 핵심적인 원인’에 대해 사회경제적 이유를 들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보자면, 지주들이 소작인을 둘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까요. 지난번에 이미 설명드렸다시피, 지주들은 소작인을 고용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죠. 자신이 혼자 농사를 짓는 것보다야 (당연히 혼자서 지을 정도의 크기도 절대 아니죠.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규모 농토를 운영하죠.) 소작인을 임노동자 형태로 고용하는 것이죠. 눈치챈 친구들도 있겠지만, 원래 이런 노동 형태는 예전엔 흑인 노예들이 하던 일이었지요. 남북전쟁 이후 표면적으로는 노예가 사라지긴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예가 사라진 것은 인권의 문제보다는 경제적 문제가 더 큰 것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를 불쌍히 여긴 누군가가 ‘풀어주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흑인 노예를 직접 먹이고 입히고 하는 비용보다는 임노동자 형태로 고용하는 것이 더 쌌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인건비가 점점 떨어진 것입니다. 어찌했든 지주들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니까요.
이윤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목화(cotton)라는 상업작물을 단일경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대규모 농토에 집약적으로 경작한 것이지요. 그래야 빨리 팔아서 돈을 벌 테니까요. 제시문에도 나오지만, 윤작이란 애초에 고려할 만한 옵션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라도 더 생산량을 늘려야 더 팔 테니까요. 하지만, 모래바람이라는 자연환경적 요소가 농토들을 불모지로 만들었지요. 지주들은 생산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소작인들을 고용할 여력이 없습니다. (물론 월급을 주는 형태라기보다는 생산된 재화를 비율로 나누는 형태였겠지요.) 여러 군데에 나눠져 있던 농토에서 소작인들을 여럿 부리면서 생산을 해도 제대로 이윤이 나올까 말까 했거든요. 그래서 농토를 합치려고 합니다. 불모지와 불모지가 아닌 곳을 농토로 가지고 있는 지주들은 불모지를 팔고, 불모지가 아닌 곳의 옆 땅을 새로 사서 농사를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물론 그때는 기계식 농법을 도입할 것입니다. 더욱 커진 농토에서 기계를 이용해서 획일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더욱 생산성이 높아지니까요. 지금 미국에서는 절대로 노동력을 이용한 목화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순백의 하얀색 목화밭에는 사람 한 명 얼씬하지 않습니다. 그저 커다란 트랙터들만이 훑고 다닙니다. 근대적 농법은 농토에서 많은 사람을 몰아냈습니다. 이를 ‘엔클로저(enclosure)’라고 불러도 나쁘지 않겠군요.
영국의 엔클로저는 15세기 이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17~18세기의 엔클로저였습니다. 농업 생산성의 향상과 더불어 젠트리(gentry)라 불리던 지주와 요맨(yeoman)이라는 중산층 농민이 농지를 직접 경영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서 그 하층의 농민들이 소규모로 자영을 할 수 있는 토지가 점점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층의 농민들은 도시로 유입되었지요. 먹고살기 위해서 ‘일자리가 있다’는 도시로 흘러간 것입니다. 그 결과 도시에는 노동력이 넘쳐났고 인건비는 낮아졌지요. 산업발전을 위한 초석이 마련된 것입니다. 반대로 이 결과 노동운동 또한 생겨났고 훗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다시 문제로 돌아와보면,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또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번엔 오렌지와 포도를 재배하는 캘리포니아이지요. 고통스럽게도 인건비는 점점 낮아집니다. 이제 논제 3으로 넘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