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테이프(소위 X파일)사건에 대해 한국경제신문 1년차 기자인 노경목 기자가 관점을 세워 쓴 글입니다.'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도청테이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한 글로,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금삼의 피
금삼(錦衫)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 성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한도 함께 묻어 있었다.
연산군은 피 묻은 금삼을 들여다보며 어머니가 사약을 받은 사연을 듣는다.
10여명의 선비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7개월간 계속된 갑자사화(甲子士禍)는 피 묻은 금삼과 그에 얽힌 사연이 폭로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연산군의 호기심,왕으로서의 '알권리',그리고 '폐비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말라'는 성종의 묵계를 깬 궁중파의 정치적 계략이 자리잡고 있었다.
◆X파일
지난 6월 카세트테이프 하나가 태평양을 건너왔다.
이른바 'X파일'이라는 불법도청테이프.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소속돼 있던 '미림팀'에서 사회지도층을 불법 도청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통신과 대화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될까 공개를 꺼리던 언론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곧 봇물 터지듯 이런저런 폭로를 쏟아냈다.
내용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내 굴지의 언론사 사주와 대기업 고위 임원의 대화를 담은 것.이들은 테이프 속에서 특정 후보에게 100억원 안팎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대선이라는 빅게임에 언론과 대기업까지….드라마의 흥행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후폭풍이 불었다.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이 진행 중이라는 시기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테이프에 등장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주미 대사의 목이 떨어졌다.
테이프에 등장한 언론사와 대기업에 보다 깊은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찰나.
또 다른 곳에서 X파일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검찰이 압수한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도청 테이프들.이번에는 한 개가 아니라 274개나 되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
권력과 개인의 치부에 대한 호기심이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까지 얻었다.
왕권 국가에서 왕의 알권리가 절대적이었듯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알권리 역시 절대적인 것일까? 도청 자체가 애초에 불법이었다는 것도,또 내용의 공개가 현행법을 위반한다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여기에 이번 기회를 잡아 '자본의 심장에 창을 꽂겠다'는 황색 저널리즘도 합세했다.
어차피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치부.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을 위해 274개 X파일 모두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계속된 사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