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한 논술의 법칙 ①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새로운 코너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코너의 제목은 Smart한 논술의 법칙입니다. 이 코너의 목적은 학생 여러분에게 글쓰기 방법을 알려드리기보다는 실제로 논술 답안지가 어떻게 채점이 되는지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직접 쓴 답안지가 어떤 채점 기준으로 채점이 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점수가 어느 정도 받게 될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해 나가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코너를 활용하는 좋은 방법은 먼저 기출문제를 읽어보고 한번 써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답안과 코너에 기재된 학생의 답안과 비교해 보고 어떤 부분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친구들과 토론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 실제로 이 코너에 기재된 학생의 답안이 어떻게 채점이 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지 알아가면 되겠습니다. 마무리는 제가 작성한 예시답안을 읽어보고 중요한 채점 포인트를 충족하는 답안을 다시 한 번 작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는 스스로 논술을 공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론은 이용준 선생님의 생글논술 첨삭노트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은 학생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 문제: 2012년 숙명여대 모의논술 공통문제
가관찰자는 동일한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에 망막에 맺힌 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닌 어떤 것에 의해 이 그림은 위에서 바라다 본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래에서 올려다 본 그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는 아예 그림을 계단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가능하다. 3차원적 사물을 2차원의 평면으로 나타내지 않는 문화에 젖어 있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분명히 이 그림을 계단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2차원적인 선의 배열로 볼 것이다. 그러므로 망막에 맺힌 상이 어떤 것인가하는 것은 그들이 속한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관찰자의 시각 경험이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결론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인리히 헤르츠는 1888년 전기 실험을 통해 최초로 전파를 발견하였다. 그는 맥스웰의 이론이 예측한 전자파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맥스웰의 전자파 가설을 테스트한 것이다. 만일 그가 관찰을 할 때 아무 선입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여러 가지 계량기의 눈금, 전기 회로의 다양한 임계 지역에서 발생한 스파크의 유무, 전기 회로의 용적뿐만 아니라 계량기의 빛깔, 실험실의 규모, 기후 상태, 신발의 크기, 그가 테스트하고 있었던 이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소한 사항들을 시시콜콜하게 기록해야만 했을 것이다.
또는 인체 생리학이나 해부학에 크게 공헌하기를 열망하는 누군가가 인간의 귓불의 무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다양한 인간의 귓불의 무게를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류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는 과학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귓불의 크기와 암의 발생률을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시키는 가설처럼 귓불의 무게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그저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신세계 지역과 비민주적인 사회 체제에서 지배층은 하층민의 냄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예 노동을 이용했다. 19세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노예제는 냄새를 이유로 지배층과 하층계급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냄새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손쉽게 측정할 수가 없다. 냄새와 냄새를 피우는 자에 대한 정의는 엉킨 실타래처럼 ‘권력 관계’를 통해 규정된다. 즉 객관적 기준에 의해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20세기 미국 남부의 백인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다.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들은 날 때부터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는데 그 냄새가 불결함,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냄새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을 흑과 백으로 분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렇게 특수한 감각적 고정관념을 만들고 다듬는 과정에서 모순과 긴장이 넘쳐났다. 가령 흑인이 악취를 풍긴다는 주장은 코 하나만으로 인종적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백인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의 어느 작가는 “현대인의 감각은 무뎌지고 향수, 술, 화학약품, 고약한 요리 냄새에 오염돼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야만 종족만이 하등 포유류만큼이나 예민하게 후각을 발달시켰다”고 주장하며, “페루의 인디오들은 후각 하나만으로 유럽인인지, 아메리카 인디언인지, 혹은 흑인인지 각기 다른 인종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흑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문명화된 남부 백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백인들은 이러한 모순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