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학교 2009 모의논술(인문계) 논제 1번 해제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게임
논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각자 다양하겠지만,쉽고 친근한 대답을 내놓자면‘논술은 대화’이다.
혹은 더욱 흥미진진하게‘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 게임’또한 가능한 답으로 꼽을 수 있겠다.
논술 고사장에 앉아 있는 수험생들은 교수님들과 독특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논제와 씨름하면서 문제를 출제한 교수님과 지적 승부를 한판 겨루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 재빨리 간파해야
그럼 성공적인 논술은? 쉽다.
교수님과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험생을 판별하기 위해서이다.
논술 시험을 통과하는 학생들은 교수님들로부터,‘그 녀석 참 쓸만한 학생이로고’하는 공인 검증을 받은 셈이다.
즉,지적인 의사소통 내지 상호교류가 가능한 학생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줄도 알고,내 말을 상대방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논제라는 형식을 통해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 앞에 난감한 질문이 던져진 수험생이 이제 할일은,장문의 제시문을 질문 도구로 동원하는 교수님들의 고약한 대화 방식에 당황하지 말고 교수님들께서 나와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길 원하시는지 대화 주제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오늘 살펴보는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모의논술을 꼼꼼히 들여다보면,‘교수님과 글로 나누는 대화’인 논술 답안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에 관한 문리(文理)를 얻을 수 있다.
고려대학교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변동이 없는 안정적인 질문 방식을 택하여,논제의 모범 혹은 전범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클래식(classic)한 논제들을 선보여왔다.
요약은 가장 기초적 평가방식
고려대학교의 논제는 세 문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 논제는 제시문 요약,두 번째 논제는 제시문들의 연관관계 파악,세 번째 논제는 주어진 자료의 분석과 종합을 통한 자기 논리의 전개를 각각 요구한다.
고려대학교에서 발표하는 논술평가의 주안점이 ①텍스트의 분석과 이해 능력 ②논리적 표현 능력 ③유기적인 종합 및 창의적인 전개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이에 부합하는 적절한 질문 방식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전체 세 논제 가운데 첫 번째 논제를 다루면서 요약하기 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고려대학교는 요약 문제를 빼놓지 않고 출제한다.
요약 논제가 채점자의 입장에서 채점에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지만,요약 논제가 항상 출제되는 이유는 단순히 채점자의 편의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약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의 기본적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을 평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검증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약 논제는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글의 요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자신이 간파한 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요약을 요리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요리사는 요리 재료를 적절히 다듬어야 한다.
세상만사 진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냐만,요리를 하려면 일단 요리에 쓰일 부분과 쓰이지 않을 부분을 구별해서 필요한 부분은 챙기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장자도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엄청나게 유명한 백정이 한 명 살았더랬다.
이 백정이 얼마나 신통방통한가 하면,그 커다란 덩치의 소를 매일 수십 마리씩 잡는 데도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아 칼날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신기해서 백정을 불러들여 요령을 물었더니,백정이 자신은 소를 잡을 때 뼈와 살가죽이 눈에 그린 듯이 보이기 때문에 항상 정확하게 칼을 놀려 칼날이 상할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는 요약의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요약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제시문에서 핵심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뼈대이고,지엽적인 내용은 발라내야 할 살가죽이다.
수험생은 소를 잡는 대신 제시문을 해체해야 한다.
제시문의 뼈대와 제시문의 살가죽을 구별할 줄 알아야 요약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즉,요약 논제에서는 수험생의 '판별 능력'이 도마에 오른다.
뼈대 세우고 살가죽 발라내라
자,그럼 눈에서 엑스레이(X-ray)를 투사한다고 생각하고 왼쪽의 제시문을 찬찬히 읽어보자.
이 글은 막스 베버의 대학 강연문인,<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발췌되었다.
그다지 어려운 글이 아니다.
난이도가 높은 제시문으로 학생들을 괴롭혀 원성을 산 적이 있는 고려대학교가 앞으로는 고교 학습 과정에 적절한 수준의 통합논술 제시문을 출제하겠다고 약속했으니,실전에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제시문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설령 논술 제시문에 어려운 글이 등장했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선 펜을 꺼내들고 언어영역 제시문을 읽을 때처럼 중요한 어휘에 동그라미를 치고 중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손이 부지런해야 머리도 부지런하게 돌아간다.
짧지 않은 제시문을 오류 없이 정확히 분석하려면 시각적으로 확실히 표시하면서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백에는 틈틈이 독해 과정에서 연상되거나 그에서 파생한 표현들을 간략히 적는다.
개인마다 접근 방식이나 인지 절차에 따라 조금씩 다른 단어나 문장에 표식을 했을지라도 독해가 끝나면 전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한 하이라이트 부분이 생겼을 것이다.
왼쪽 제시문의 독해 과정에서 생긴 표식 가운데에는 반드시 '학문'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학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문'이 핵심 키워드
'학문'은 꼭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오늘의 노른자위이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학문은 능가되고 낡아버리기를 바란다'는 표현,학문에서는 '원칙적으로 진보가 무한히 계속된다'라는 문장과 '학문이 무한한 진보라는 법칙에 예속된다'는 구절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학문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든가 '학자는 항상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구절도 요주의 대상이다.
표식의 대상이 된 상기 구절들이 첫 문단의 뼈대에 해당한다.
예술 운운하는 나머지는 발라내야 할 살가죽에 불과하다.
학문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예술을 대립적 개념으로 활용하여 이해를 도운 것이다.
자,그럼 일단 여기까지 줄치고 동그라미를 두른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첫 번째 문단에서 베버가 하려는 말을 이해해 보자.
중요한 뼈대만 추리면서 베버의 논지를 이해하면,그가 첫 문단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학문은 무한하게 진보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코 완성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나가는 건축가인 셈이다.
그런데 학문이라는 이 건축과정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래서 학자는 숙명적으로 '낡아빠지고 진부해질 학문'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고 학문을 할 때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말고 순수하게 학문 그 자체만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상기 '학문 진보의 법칙'과 '학문 순수성의 법칙'을 결합하면,'학자는 구태의연해질 숙명을 지닌 학문을 위해 다른 아무런 이유는 없이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소결론이 나온다.
학문은 영원한 건축 과정
이제 여기까지 파악했으면 베버의 조금은 허무한 심정이 느껴져야 한다.
이제 베버의 대화 물꼬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다면 학문을 하는 이는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첫 문단의 소결론을 놓고 학문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제시문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베버의 답이 제시된다.
두 번째 단락에서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어야 할 부분은 '지성적 합리화'라는 표현,그리고 '지성화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 및 '지성화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탈 주술화'라는 구절들이다.
원시인과의 비교라든가,전차 작동 원리에 대한 무지는 이해를 보조하기 위한 지엽적인 예시들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표현'이 중요
이제 추려낸 핵심 표현을 위주로 두 번째 문단의 논지를 이해하면,베버는 학문의 목적과 의미는 지성적 합리화에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합리주의적 학문관을 전개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 베버는 합리주의의 관점에 서서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인지적 틀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소결을 맺는데,이를 첫 번째 문단의 소결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이해하면 된다.
뼈대를 다 추렸으니 이제 답안을 작성할 차례이다.
주의해야 될 점은,답안을 쓰면서 '앵무새'로 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해의 가시밭길을 멀쩡하게 헤쳐 나온 다음에 난데없이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종알종알 되풀이하는 앵무새로 변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수험생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제시문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단어와 문구,즉 이른바 핵심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요약이 끝나지는 않는다.
요약하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여 그 이해의 '결과'를 완결된 한 편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다.
다시 말하자면,좋은 요약 답안은 이해한 바를 '자신의 표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독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표현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떤 대학에서는 수험생들이 '앵무새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우려하여,답안작성 유의사항에서 이를 확실히 강조하기도 한다.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베껴 쓰지 마시오!"
제시문을 한 줄 한 줄 가위로 잘라 답안에 풀을 발라 붙인 느낌의 답안을 작성하면 대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해한 바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밀도 있는 글이 좋은 요약 답안이다.
또한 오늘의 제시문은 아주 상냥한 제시문에 해당한다.
핵심 키워드가 외부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핵심적인 표현만 찾아가며 요지를 추려도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의도하는 바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제시문도 종종 출제된다.
이러한 종류의 제시문을 요약할 때에는 제시문에 있는 단어나 구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으로 가득 채워진 제시문을 그대로 옮기면 곧 바로 낙제 답안이 된다.
논술 답안은 논지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나야 하는데,애매모호한 제시문의 표현이 그대로 등장한다면 논술 답안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주제문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을 때는 스스로 주제문이나 핵심 키워드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논지가 묵시적으로 깔려 있는 경우에는 논지의 핵심을 시사하는 부분을 체크하면서 읽긴 하되,글귀의 의미를 해석하고 행간을 채워가며 더욱 적극적인 독해를 해야 한다.
'행간 읽기'와 '의도 파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환기해야 할 점은,요약은 논지 핵심에 관한 심층적 독해를 효과적이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제시문에서 논지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 묵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는 결국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