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교육제도에
불만 품은 학생들 반기
사회전반으로 좌파사상 확산
프랑스 68혁명은 1968년 3월 파리 낭테르대(현재 파리 10대학) 학생들이 '여자 기숙사를 개방하라'라는 슬로건을 갖고 학내 집회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남자 기숙사는 여학생이 출입할 수 있으나 여자 기숙사에 남학생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은 불평등하다며 시작된 집회는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명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파리 당국은 2개월 넘게 지속된 이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낭테르대를 임시 폐교하게 된다.
하지만 폐교 조치는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학생 8명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사무실을 습격했다가 체포되자 학생들은 낭테르대 본부를 점거했다.
슬로건은 남녀 평등과 여성해방, 학교와 직장에서의 평등, 반전·반핵 등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5월 학생과 연합한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한 달 이상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샤를 드골 정권은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6월 총선거를 실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나 다음해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퐁피두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후 학생 시위는 줄어들었나 성개방, 반전사상, 평등주의사상, 환경보호운동은 계속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파리 5월 혁명 즈음 미국에서는 4월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베트남전에 항의하며 학교 행정 부서를 점거했고, 일본에서는 1969년 1월 전학공투회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도쿄대 해체를 요구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학생들의 좌익 운동이 휩쓸었다.
⊙ 68운동의 배경 1960년대 학생 운동은 표면상 전후 베이비 세대들이 기존의 권위주의 질서에 저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을 보면 모두 네오마르크시즘을 추종하고 있다.
즉 기존의 혁명적 좌파사상에는 반대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개선해 보자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낭비적인 소비사회를 비판하고 "이는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도식이 유행했는데 많은 학생이 영향을 받았다.
68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은 소위 3M으로 불리는 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또 프랑스 학생들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샤르트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 68혁명은 권위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제4공화국 말 17만명이던 대학생 인구가 10년 만인 1968년 60만명 선으로 증가했으나 교육시설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