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공계 CEO열전 (끝)
기술이 국력이다

(10) 이공계 CEO열전 (끝)

최만수 기자2011.12.14읽기 7원문 보기
#기업공개(IPO)#코스닥#벤처캐피털#엔젤 투자#KAIST#네오위즈#검색엔진#스타트업

이공계 시스템 급변… 남들만 따라가면 후회한다"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딱 10억원만 벌어보자.” 15년 전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며 그가 세운 목표였다. 23세의 청년은 10억원만 있으면 부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8명의 공동창업자들은 씻지도 않고 한 방에서 배달음식으로 몇 년을 버텼다. 4년여의 항해 끝에 네오위즈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등장하던 날.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38)는 10억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으로 급성장한 네오위즈가 피망 등 게임 부문에 집중하자 당시 인터넷사업본부장이던 장 대표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평소 꿈꿨던 검색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2006년 네오위즈에서 나와 ‘한국판 구글’로 불린 검색엔진 ‘첫눈’을 개발했다. 당시 정식 서비스도 하지 않았지만 국내외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NHN이 구글을 따돌리고 350억원에 이 기술을 인수해 검색엔진 업그레이드의 발판으로 삼아 화제가 됐다. 10억원을 벌고 싶다던 청년 개발자는 15년 만에 1000억원대 자산가가 됐다.

이제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던 보장된 삶. 하지만 그는 다시 뛰쳐나왔다. 지난해 4월 국내 최초의 엔젤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인 본엔젤스를 공동 창업한 장 대표는 15개 벤처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장 대표는 “사람들이 왜 벤처일을 계속 하느냐고 묻는데 벤처는 뭔가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며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팀워크를 통해 얻는 희열감과 성취감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공학도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대구과학고를 졸업하고 최고의 공학도들이 모인다는 KAIST 전산학과에 입학했다.

남들은 천재라고 불렀지만 그는 ‘노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대학 때는 친구들보다 뒤처진 프로그래밍 실력을 빨리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학시절 친구 2명과 함께 만든 수강신청 시스템이 KAIST의 수강신청 시스템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장 대표는 “프로그래밍을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굉장히 늦은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졸업할 때쯤 되니 그래도 학교에서 유명한 프로그래머가 돼 있었다”며 “지금은 내가 프로그램을 짠다고 하면 다들 웃는다”고 말했다. 2002년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그의 ‘개발자의 끼’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현역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국방부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다. 그는 지금도 공부에 쏟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재무와 마케팅, 경영 전공 서적들까지 뒤지며 필요한 지식을 모으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한다. 장 대표의 말투는 진지하면서도 정감이 있다. 벤처 후배들에겐 자상한 맏형이요, 인생의 멘토다. 성공한 벤처기업인이지만 아직도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다. 그래서 만나보면 늘 청년 같다. 장 사장의 소탈한 태도는 작업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기존 서울 선릉역 사무실과 블루홀스튜디오가 자리 잡은 강남역 사무실 두 곳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강남역 사무실에는 따로 집무실이 없다. 다른 사원과 마찬가지로 책상 하나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장 대표는 2006년 첫눈을 매각할 당시 본인이 보유한 지분 가운데 30%를 직원들에게 나눠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려 105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장 대표는 지난해 4월 국내 벤처캐피털 중에서는 최초로 초기기업 투자 전문회사인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를 창업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찾아 격려하고 경영을 도왔다. 장 대표의 투자원칙은 수익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먼저 본 뒤 그 사람이 하는 일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을 본다는 것이다.

성과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찌감치 투자했던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는 ‘한류’ 열풍과 함께 연매출 30억원을 거두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영어교육 전문업체인 스픽케어는 연매출 20억원 규모로 컸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제조업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장 대표는 후배들에게 가능하면 공동창업을 하라고 말한다. 팀이 잘 갖춰졌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지며 성격이 다르거나 전문지식 분야가 다른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는 없으니 모든 걸 걸면 안 된다.

세 번 도전해서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고 했다.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성공을 이루려는 창업자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투자를 피하게 된다”며 “투자를 할 때도 결국 사람을 보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상호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한국경제신문사 내 1층 카페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장 대표는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자기만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면 다들 똑같아지려고 애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는 창업에도 스펙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학생의 질문에 “스펙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올인하지는 말라”며 “자기 시간의 70~80%를 스펙 쌓는 데 쓴다면 20~30%는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장 대표는 “경제시스템은 변하고 있다. 모두가 다 제조업 분야에서 일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의사 변호사 대기업 직원이 될 수는 없다”며 “남들만 따라가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20대 때는 용기를 갖고 조금 멀리 보고 자기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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