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검은돈'과 '눈먼 돈'의 차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이달 초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란 자료가 큰 파문으로 번지고 있다. 각국 유력인들의 조세 회피 의혹이 담겨 있어 전·현직 지도자들과 정치인, 유명인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언론을 달구는 관련 보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어 세 개가 있다. ‘돈세탁’ ‘비자금’ ‘검은돈’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당하지 못한 돈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어법적으로도 같은 게 있다. 모두 합성어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검은돈’은 띄어쓰기와 관련해 주의해야 할 말이다. ‘검은 돈’ 식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검은돈’은 ‘뇌물의 성격을 띠거나 그 밖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고받는 돈’을 이르는 단어다. 애초에는 ‘검은 돈’으로 띄어 쓰던 것인데,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특정한 의미로 쓰여 하나의 단어로 재탄생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1980년대 중반부터 간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글말에서 쓴 지 벌써 30여년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검은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말이다. 이는 ‘속셈이 음흉한 손길, 행동, 힘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자어로는 ‘마수(魔手)’다. ‘검은손’이나 ‘검은돈’은 ‘검다(黑)’란 의미를 벗어나 단어가 된 말이다. 따라서 띄어 써서는 안 되며 항상 붙여 써야 한다. 수사적으로는 전의(轉義)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환유 또는 은유를 거친 단어다.
이처럼 둘 이상의 낱말이 결합해 하나의 단어가 된 말을 합성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부족한 명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이들 수많은 합성어 덕분이다. 합성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중에서 검은돈, 검은손같이 ‘관형어+명사’ 꼴로 이뤄진 합성어는 띄어쓰기를 틀리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큰손’도 같은 유형의 합성어로 자주 틀리는 말 중 하나다. ‘큰 손’처럼 띄어 쓰면 단순히 손의 크기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큰손’과 같이 붙여 쓰면 이는 ‘증권시장 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규모 거래를 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두 개의 낱말이 서로 어울려 새로운 의미의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큰아버지’ ‘큰집’ ‘큰달’ ‘큰아들’ ‘큰물’ ‘큰소리’ ‘큰일’ 따위가 모두 띄어 쓰느냐 붙여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말이 합성어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를 ‘금융시장의 큰 손’ 식으로 띄어 쓰기 십상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관형어+명사’ 형태의 말 가운데 ‘검은돈’만큼 자주 쓰이면서 아직 단어의 지위를 얻지 못한 말이 ‘눈먼 돈’이다. 이 말은 관용구다. 관용구란 두 개 이상의 단어로 이뤄져 각각의 말만으로는 전체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를 말한다. ‘손이 크다’고 하면 말 그대로 손이 ‘크다’는 게 아니라 ‘씀씀이가 후하고 크다’는 뜻이 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
눈먼 돈’ 역시 ‘임자 없는 돈’ ‘우연히 생긴 공돈’이란 뜻으로 확대돼 쓰인다. 이 말은 대략 1990년대부터 언론에서 활발하게 쓰기 시작했으니 우리말에서 관용구로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그러나 관용구이다 보니 사전 표제어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사전에서 이 용법을 보려면 올림말 ‘눈’을 먼저 찾아야 한다. 단어가 아니므로 붙여 써서는 안 되고 띄어 써야 한다. ‘검은돈’의 연장선에서 보면 ‘눈먼 돈’도 이제 하나의 단어(‘눈먼돈’)로 처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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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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