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 보팅과 기업 경영
상장회사들이 감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이 일부 완화된다. 내년 1월 섀도 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이 폐지되면 감사 선임이 어렵게 된다는 상장사들의 지적을 감안한 조치다. 그동안 상장사들은 주총장에 나온 주주들의 찬반 비율을 전체 주주의 의견으로 간주하는 섀도 보팅을 활용해 감사를 선임해왔다.
- 6월20일 한국경제신문
내년 초 섀도 보팅 폐지를 앞두고 상장사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새도 보팅이 폐지되면 주주총회(주총)에서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게 힘들어져서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은 주요 경영안건을 심의·의결하는 주총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보유 주식이 적은 소수주주의 경우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는 주주들이 많으면 회사 입장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주총에서 주요 경영 안건을 논의해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주총 결의는 크게 보통결의와 특별결의로 나뉜다. 보통결의 안건은 한 회계연도 기간 경영활동에 대한 성적표인 재무제표의 승인, 이사와 감사의 선임 등이 해당한다. 특별결의 안건으론 한 회사 운영에 대한 법으로 볼 수 있는 정관의 변경, 자본금 감축(감자), 회사의 분할이나 합병, 회사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등이 있다. 주총에서 보통결의가 통과되려면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또 특별결의는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으면 이런 안건들을 심의하고 통과시킬 의결 정족수가 모자라 주총 자체가 불가능하다.
섀도 보팅이란?
말 그대로 그림자 투표인 섀도 보팅(shadow voting)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다. 결의에 필요한 참석주식수가 모자라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예탁결제원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의결권 행사는 증권의 보관과 예탁·결제 업무를 맡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식 발행회사의 신청을 받아 행사한다.
예를 들어 100만주의 주식을 발행한 B회사의 주총에 총 20만주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참가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 회사의 보통결의는 25만주, 특별결의는 34만주가량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찬성해야 통과될 수 있다. 따라서 B회사는 20만주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만으론 주총을 여는 게 불가능하다. 이때 B사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바로 섀도 보팅 제도다. B사가 예탁결제원에 섀도 보팅을 요청하는 것이다. 만약 예탁결제원이 B사 주식 30만주를 갖고 있다고 하자. 이때 예탁결제원은 주총에서의 찬성과 반대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한다. 예컨대 자본금을 줄이는 안건에 대해 B사 주총에 참석한 20만주의 주주들이 찬성 12만주(60%), 반대 8만주(40%)의 의결권을 행사했다면 예탁결제원도 30만주 중 60%인 18만주는 찬성, 40%인 12만주는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다. 섀도 보팅은 1991년 처음 한국에 도입돼 현재 상장사 중 약 3분의 1이 활용하고 있다.
섀도 보팅은 그러나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의결 정족수를 손쉽게 확보하고 뜻대로 의안을 가결,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소수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경영 안건의 명실상부한 토론·심의의 자리가 돼야 할 주총을 형식적으로 만드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들었다. 출석하지 않은 주주가 출석한 주주와 같은 비율로 출석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중립적인 의결권 행사라고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9년 상법 개정으로 전자투표가 도입되고 2010년 예탁결제원이 전자투표 시스템을 구축,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손쉽게 행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서 지난해 5월 자본시장법 개정 때 2015년 초 폐지한다는 방침이 확정됐다. 전자투표제는 주총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들이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섀도 보팅 폐지하면 정상적 경영 불가능”
상장사들은 최근 섀도 보팅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해달라고 아우성이다. 기업들은 섀도 보팅 제도가 폐지되면 주총 결의에 필요한 주주들을 모으기가 어려워 경영에도 차질이 빚어진다고 주장한다. 상장사들의 모임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순현 법제조사파트장은 “우리나라는 주주들의 손바뀜이 많아 주총을 앞두고 자신들이 주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게 일일이 주총 참석을 독려하려면 큰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