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9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무역원활화 등에 대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국장은 7일 “WTO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협정이 체결됐다”며 “전 세계가 다시 WTO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WTO 출범 이후 첫 무역협정으로 세계 무역 자유화를 위해 2001년 출범시킨 도하개발어젠다(DDA)에서 12년 만에 나온 성과다. - 12월9일 한국경제신문
WTO가 발족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다운 일을 해냈다. 비록 극히 일부 분야이긴 하지만 도하라운드를 부분 타결시킨 것이다. 도하라운드 또는 도하개발어젠다(DDA·Doha Development Agenda)는 WTO 159개 전 회원국이 참여하는 교역자유화 협상으로 2001년 카타르의 도하에서 시작됐다.
# 다자협상과 WTO
세계의 많은 나라가 참여하는 협상을 다자 협상(multilateral negotiation)이라고 하는데 특히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WTO의 전신)와 WTO 주관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동시에 벌이는 교역자유화 협상을 ‘라운드(Round)’라고 한다. 이에 비해 양자 협상(bilateral negotiation)은 두 나라나 지역 간 이뤄지는 협상이다. 교역자유화를 위한 대표적인 양자 협상으론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 RTA(Regional Trade Agreement·지역무역협정) 등이 있다.
WTO는 GATT가 확대 개편돼 1995년 1월 출범한 국제기구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등 전승국들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무역자유화가 세계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GATT를 출범시켰다. GATT는 1961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무역 협상을 진행, 교역에 장애가 되는 관세율을 크게 내리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1967년 타결된 ‘케네디 라운드’부터는 개도국들이 본격적으로 협상에 참여했으며, 1979년 타결된 ‘도쿄 라운드’에선 비관세장벽의 철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서 교역자유화 범위도 관세에서 점차 비관세 장벽, 농업,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으로 확대되고 참여 국가 수도 크게 늘었다. 무역 분쟁 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절차도 마련됐다.
# 도하라운드와 '발리 패키지'
DDA는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장관회의)에서 출범했다. WTO 출범 이후 첫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교역 장벽을 없애는 걸 목표로 했다. 협상 대상은 크게 △농업 △NAMA(Non-Agricultural Market Access·비농산물 분야 시장접근) △서비스 △규범(반덤핑, 보조금, 지역협정) △환경 △지식재산권 △분쟁해결 △무역원활화 △개발 등 9가지다.
출범 당시 WTO 회원국들은 2005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협상을 한꺼번에 일괄 타결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내비쳤다. 하지만 농산물,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회원국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라지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가을 이후 본격화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도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세계 주요국은 WTO 대신 FTA 체결에 열을 올렸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지역 중심의 다자간 FTA를 추진하면서 다자간 협상의 위상은 급격히 떨어졌다. ‘WTO가 죽었다’ ‘새로운 다자기구가 탄생해야 한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DDA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WTO 각료회의는 2011년 12월 타결하기 쉬운 분야부터 우선 논의키로 협상 방식을 바꿨는데 그 결과가 바로 ‘발리 패키지’다.
‘발리 패키지’는 △무역원활화 △일부 농업 협상 △개도국 우대(최빈국 특혜) 등 3개 사항이 주요 내용이다. 이 가운데 특히 무역원활화는 통관절차 간소화, 무역규정 공표, 세관 협력 등이 주요 내용으로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꼽혀온 통관절차를 크게 간소화함으로써 상품 교역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농업 분야에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수입 유제품이나 곡물류 등에 낮은 관세를 부과키로 했으며 논란이 거셌던 농업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선 안보 차원에서 식량을 비축할 경우 개도국 정부가 보조한도를 초과해 농가에 보조금을 주었더라도 이를 인정키로 했다. 또 최빈국 국가들이 선진국들에 수출할 때 관세를 깎아주고 쿼터(수출한도)를 완화해 주는 등의 항목도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