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빻던 물레방아가 철광석을 녹이다
증기기관 나오기전 '기계 혁명' 주도 용광로 온도 높여 철 대량생산 앞당겨
물레방아는 역사상 최초의 기계식 엔진이라 할 만하다.
흐르는 물 속에 내재된 에너지를 자동적으로 생산적인 작업으로 전환시키는 물레방아는 무생물 에너지를 대규모로 동력화한 첫 번째 돌파구였다.
증기기관 이전 시대의 산업 발전은 결국 물레방아를 어느 정도 이용할 수있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레방아는 수평 물레방아와 수직 물레방아로 나눌 수 있다.
수평 물레방아는 물이 바퀴를 돌리면 그 위에 평행하게 붙어 있는 맷돌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로 돼 있는데,주로 곡물을 빻는 용도로 전 세계에서 쓰였다.
두 명의 노예나 당나귀를 써서 약 1.5마력의 힘을 내는 고대의 맷돌에 비하면 이런 물레방아의 힘은 몇 배는 더 강했다.
수직 물레방아는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바퀴를 물 속에 수직으로 배치해 훨씬 더 큰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수직으로 도는 바퀴의 힘은 캠축과 기어 장치를 통해 전달돼 거기에 연결된 맷돌을 수평으로 돌렸다.
로마 시대에 바르브갈(Barbegal) 지역에서는 10㎞가 넘는 수로로 끌어온 물로 18개의 바퀴를 돌려 일련 공정 모터처럼 사용할 정도로 물레방아 이용 기술이 발전해 있었다.
중세에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 상사식(上射式 · overshot) 수직 물레방아였다.
이 물레방아는 물이 위쪽에서 바퀴 판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기존 물레방아보다 보통 3~5배의 효율에 최대 60마력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물레방아를 이용해 중세 유럽은 일종의 '기계혁명'을 겪었다.
유럽 전역에 물레방아는 몇 채나 있었을까. 1086년 잉글랜드에서 편찬된 '둠즈데이북'이라는 과세 재산 조사집에는 세번 강과 트렌트 강 남부 3000곳의 거주지에 5624채의 물레방아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거주지 한 곳에 물레방아가 2채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율은 유럽에서 인구가 많고 번영을 누리는 지역과 비슷하다.
14세기 초 파리 근처의 센 강에는 불과 1마일 안에 68채의 물레방아가 집중돼 있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모든 작은 하천에는 대개 4분의 1~2분의 1마일마다 물레방아가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될 즈음,유럽 전체에는 대략 50만채 이상의 물레방아가 있었다.
여기에서 얻는 막대한 에너지는 서구 경제가 산업혁명 단계로 넘어가는 발전 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