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12년만에 20달러대 추락…逆오일쇼크로 세계경제 ‘비틀’
◆역 오일쇼크와 세계경제
국제 유가의 기준 역할을 하는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12년여 만에 배럴당 30달러 선 밑으로 추락했다. 자금사정이 나빠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빼가는 등 역 오일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중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건설과 플랜트 등의 프로젝트에서 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기고, 사업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1월14일 한국경제신문
☞ 국제 유가 하락은 경제에 득(得)일까 해(害)일까?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나 2008년 여름 유가가 배럴당 145달러까지 치솟은 경험에 비춰보면 당연히 이익이 더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국제 유가 하락은 산유국을 제외하고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됐다. 그런데 최근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가가 급락했는데 오히려 디플레이션(경기침체)을 걱정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역(逆) 오일쇼크(Reverse Oil Shock)’ 현상이다. 역 오일쇼크는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달리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걸까?
국제 유가는 최근 1년 새 70% 이상 폭락했다. 2014년 6월20일 배럴당 107.26달러에서 2016년 1월19일 현재 28달러 선이다.
2003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유가가 이처럼 급락한 이유는 공급은 늘어나는 데 수요는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 원유 채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퇴적암층에 매장돼 있던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생산량이 급증했다. 미국은 셰일오일 생산 확대에 힘입어 원유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또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예전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해 가격을 유지해왔는데 최근엔 셰일오일 업체들과 치킨게임에 나서면서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다.
치킨 게임(chicken game)은 경쟁자가 망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생산 확대나 가격 인하를 지속하는 극단적 게임을 뜻한다.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셰일오일 업체를 도태시키려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핵무기 개발 포기로 이란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 조치가 풀리면서 세계 4위 원유 매장국인 이란이 원유 수출에 나서고 있다. 이란의 원유 수출은 초기 하루 120만배럴에서 시작해 올 연말이면 320만배럴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비해 수요는 세계 경기 침체로 정체 상태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의 수요가 부진하다. 중국의 원유 소비는 세계 전체 소비(하루 7700만~7900만배럴)의 11%에 달한다.
유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감소해 단기 총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되면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물가는 떨어지게 된다. 이게 과거의 패턴이다. 하지만 최근엔 반대의 현상이 보여진다. 물가가 떨어지지만 GDP는 늘지 않거나 정체되는 모습이다. ‘역 오일 쇼크’인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기 총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했지만 총수요곡선은 좌측으로 이동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총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해도 총수요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하면(즉 총수요가 줄어들면) 원래 수준보다 물가가 떨어지고 GDP는 더 감소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가 총공급이 증가한 만큼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 러시아,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 산유국 등이 ‘약한 고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정부 재정수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액의 95%가 석유인 남미 최대 산유국으로 유가가 배럴당 117.5달러 이상이 돼야 나라 살림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보유자원 가격의 하락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원의 저주’ 현상이다.
산유국이 사회기반시설(인프라)이나 플랜트 건설을 줄줄이 미루니 중동 건설과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 같은 곳이 직격탄이다. 게다가 원유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추시설과 철강 파이프, 원유를 실어나를 선박 등을 만드는 업체도 줄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은 와중에 유가 급락은 경제주체들의 공포심리를 불러일으켜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