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지배의 메커니즘
⊙ 정치 권력의 실천 방식
정치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경찰,군대,관공서와 같이 공적 권력을 물리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억압적 국가기구이며,다른 하나는 교육이나 종교,정치,언론과 같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은밀히 주입시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권위에 복종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다.
얼마 전 교육의 문제를 논의할 때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이러한 구분은 후기 맑시스트로 알려진 루이 알튀세르의 개념이다.
전통적인 권력의 행사 방식은 주로 전자에 기댄 경우가 많았다.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물리적 공권력을 행사하면 손쉽게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배 수단은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한시적일뿐더러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는 구성원들의 신념을 일정하게 조작하여 자발적으로 지배에 순응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지배의 방식이라 할 것이다.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권력 행사방식은 전자에 기댄 경우가 많았다.
이데올로기를 전혀 활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당시 정치권력은 경찰과 군대,정보기관 등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었던 것이다.
1990년대 민주화가 진척되고 국민의 의식수준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거의 물리적 공권력은 차츰 약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여전히 물리적 강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누그러진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의 방식 역시 과거의 억압적인 국가기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국가기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언론과 교육,문화와 경제 정책 등을 활용하여 구성원을 자발적으로 길들이는 것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뿐더러 동시에 효율적인 지배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조직과 관리를 통해서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그것이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메커니즘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 이데올로기의 지배
성석제의 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물리적인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나아가는 과정을 풍자적인 알레고리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1차적이고 표면적인 내용은 어느 중소 도시의 조직폭력배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내용일 뿐 작품에서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