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교육,지배와 저항의 담론 사회학자 루이 알튀세르에 따르면 국가의 통치수단은 크게 억압적인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경찰이나 군대,관공서와 같이 국가가 직접 그 권력을 실제적으로 행사하는 기구를 가리키며,후자는 종교,가족,법,정치,조합,언론처럼 사회구성원들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은밀히 주입하여 통치를 수월하게 하는 장치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란 사회의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커다란 주체(S),곧 지배 이데올로기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작은 주체,곧 개인들(s)을 호명(interpellation)하여 그들을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 포섭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주목할 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의 범주 안에 '교육'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교육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안정을 위해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는데 그 첫째는 교육이 생산수단의 변형과 노동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한다는 것이고,둘째는 교육이 기존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내용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의 기능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존 사회를 유지해나가는 데에 큰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서의 교육은 체제순응적인 개인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시민의 탄생을 처음부터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일 수 있다.
한편 알튀세르와 달리 교육의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체제 비판이나 저항의 담론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들도 있다.
헨리 지루와 같은 교육학자는 교사는 비판적인 지식인이며 그가 행하는 교육 행위는 비판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었고 의식화 교육을 주장했던 파울로 프레이리도 교육이 진정한 인간 해방을 가져온다고 역설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오랜 세월 교육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아마도 그것은 교육이 그 어떤 제도보다도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역할과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에 대한 헤게모니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도 있고,역으로 저항과 비판의 담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헤게모니에 대한 정치 세력의 갈등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최시한의 소설 「허생전을 읽는 시간」은 교육에 대한 헤게모니적 갈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진정으로 교육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보자.
⊙ 허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의 주요인물은 작품의 서술자인 '나'와 말더듬이 '윤수',그리고 우등생인 '동철'과 국어를 가르치는 '왜냐 선생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어 시간에 '허생전'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별명이 붙은 '왜냐 선생님'은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학생들에게 줄거리를 각자 잡아오라는 과제를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