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길들이는 감시 사회
⊙ 통제사회에 대한 성찰
소설가 윤흥길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장마」로 아주 잘 알려진 작가이다.
분단과 이산의 민족적 상처를 '구렁이'라는 주술적 상징물을 통해 극복했던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비롯된 비극을 가족애와 민족애로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윤흥길의 작품은 「장마」와 같이 이산과 분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아홉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와 같은 연작을 통해 산업화 속에 소외된 인간성과 소시민의 허위의식을 들춰내기도 했으며 「완장」 같은 작품에서는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윤흥길의 작품 중에는 70년대 정치 상황에 대한 풍자적인 내용도 눈에 띈다.
1975년 <한국문학> 7월호에 발표한 「제식훈련 변천약사」도 그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작가 윤흥길은 일상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적인 요소와 이를 강제하는 사회적 감시와 통제의 시선을 '제식훈련'이라는 코드를 통해 비판적으로 제시해주었는데 이는 유신 정권 하의 통제사회에 대한 성찰로 해석할 수 있다.
⊙ 군대식 전체주의 문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고등학교에서 군대식 제식훈련을 가르치던 시절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각급 고등학교에는 교련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 담당교사는 군대식 제식훈련 및 총검술 등을 학생들에게 지도해왔다.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겠지만 과거에는 초등학교에서까지 애국조회라는 형태로 군대식 제식문화가 존재했다.
이 작품의 주요 이야기는 이런 제식훈련을 지도해야 했던 체육교사들의 1급 정교사 연수 기간에 벌어진다.
1급 정교사 연수는 교직에 들어선 지 3년차 되는 2급 정교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데 연수를 수료하면 승급과 더불어 호봉이 한 단계 높아진다.
한마디로 급여가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인이 된 교사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연수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간혹 몇몇 교사들은 연수 자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체육교사인 윤성철,서창원,안종복은 대학 시절 자신들의 은사였던 강명록 교수로부터 1급 정교사 연수의 일환으로 제식훈련을 받는다.
그런데 강 교수는 뜨거운 여름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생을 지도하듯 엄격하고 꼼꼼하게 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체육교사들은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문제 제기 한번 없이 고스란히 강 교수의 훈련을 따른다.
그러던 차에 함께 1급 정교사 연수를 받고 있는 대학시절 동창인 국어교사 이문택의 놀림과 회유에 빠져 윤성철 등은 강 교수의 오후 강좌에 불참한 채 술을 마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