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폭력보다 잔인한 건 시간을 통제하는 규율
1. 자유를 억압하는 규율
197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를 읽어가다 보면 바로 그 전 해에 국내에 개봉되었던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떠올릴 수 있다.
작품의 소재가 전자의 경우 교도소이고,후자의 경우는 그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정신병원인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두 작품 모두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신 시절을 겪고 있던 한국이나 베트남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국 역시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적잖이 억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쉽사리 겹쳐진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범죄자 맥머피는 좀 더 편한 생활을 위해 스스로 미친 척하며 정신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러나 보다 자유로울 것 같았던 병원에서도 보이지 않는 압력은 존재하고 있었고 이를 벗어나려던 맥머피는 결국 간호사에게 끌려가 끔찍한 전기 치료를 받게 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교도소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사소한 규율을 가지고 미시적인 권력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병원 간호사 레취드는 겉으로는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규율된 시간을 통해 환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고 있는데 이는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도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제의식은 근대적인 규율 권력을 비판한 미셸 푸코와도 연결될 수 있다.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벤담의 원형 감옥을 소개했는데 그것은 근대적 규율 권력의 가장 상징적인 기구였던 것이다.
한가운데 감시탑이 솟아 있고 그 주위에 원형으로 감방들이 배치돼 있는 원형 감옥은 감시원은 항상 죄수를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원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죄수들은 끊임없이 감시하는 시선을 의식하다가 결국에는 이를 내면화하여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기에 이른다.
영화 속의 정신병원처럼 원형 감옥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신체와 정신을 규율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원형 감옥의 구조가 현대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감시의 대상도 범죄자 같은 예외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공장,학교,병원,군대,교회 등은 모두 이러한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이며 개인은 권력 기구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 존재가 된다.
결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근대의 규율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미학적으로 접근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 방생을 통한 자유의 대리만족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는 대표적인 규율 권력 기구인 감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권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한 늙은 사내가 가막소에서 출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