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 지식인을 위한 변명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은 잉여적인 존재이며,스스로 버림받은 존재'라고 규정한 바가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 말은 대단히 모순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늘 새로운 지식을 추구했던 지식인들의 몫이었음을 생각할 때 지식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이며,사회를 이끌어가는 이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르트르는 왜 그다지도 모순된 진술을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지식인의 태생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식인은 우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고급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의 태생은 보편적으로 중산층,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층 이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식인은 자신이 익힌 지식을 자신이 속한 특정 계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다시 말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좀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좀 어려운 표현을 쓰자면 지식인은 당파적인 성향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기득권이나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과는 필연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그는 태생이 다르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들에게도 배척당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사르트르의 표현대로 지배계층이 어쩌다 실수로 만들어낸 잉여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식인이 지배계층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기존의 권력이나 기득권을 지닌 집단의 모순점을 파악하는 데 활용한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현재의 모순을 지적하고 항상 미래의 진보를 꿈꾸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사회 속에 존재하는 모순을 깨닫는 존재이다.
현재의 그 누군가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보다 나은 역사의 진보를 위해 현재의 모순을 가장 먼저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동굴 속의 카나리아처럼 타인에게 위험을 예고하는 존재,그가 바로 지식인인 것이다.
우리 소설 속에서 지식인이 소설의 주인공이 된 예들은 근대문학 초기에 이미 존재했었다.
춘원 이광수의 「무정」이 그러하고,염상섭의 「만세전」이나,심훈의 「상록수」 등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