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자유 의지냐 운명이냐
⊙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너무도 유명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이 운명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결국에는 신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모티브로 해서 창작되었다.
선왕인 라이어스가 아들 오이디푸스를 낳은 후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와 혼인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되어 이에서 벗어나려고 '아들 오이디푸스'를 죽이라 명하지만 운명은 가혹하게도 신탁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실행하고 만다.
아무리 인간이 운명을 벗어나려고 해도 운명은 실현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자유 의지의 존재이며,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는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에서 보듯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유명한 저작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수단이나 기계에 불과하며,따라서 유전자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곧잘 이타적으로 해석하는 벌이나 개미의 죽음도 결국에는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한 복잡한 시스템으로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도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전인자의 명령에 의한 것이 되고 자유 의지는 그 존립 근거를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는 일말의 자유 의지도 없다는 말인가.
또 인간은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인가.
이 물음은 결코 쉽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주어진 운명(환경)에 의해 인간 삶이 결정된다는 결정론과 인간 스스로가 자기 삶을 선택적으로 살아간다는 자유 의지론 사이에는 생각보다 오랜 논쟁의 역사가 존재한다.
고대 스토아학파와 아리스텔레스,중세의 토머스 아퀴나스와 계몽주의 시대의 임마누엘 칸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자유와 운명에 관한 논의는 철학의 고전적 주제이기도 하다.
대개 스토아 학파와 아퀴나스 등은 결정론적인 면을 지지한 반면,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고,칸트는 '도덕은 반-인과적(contra-causal)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통해 인간은 아무런 이유나 원인이 없이도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칸트는 인간을 스스로 순수하게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이처럼 자유 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는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 역마살의 운명
우리 소설에도 이처럼 운명과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에서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 있다.
「무녀도」「을화」를 통해서 전통적인 삶과 근대적인 삶 사이의 갈등을 선보였던 작가 김동리의 「역마」가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