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이 불러온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경제야 놀자

미·이란 전쟁이 불러온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유승호 기자2026.03.19읽기 5원문 보기
#스태그플레이션#필립스 곡선#오일쇼크#자연실업률#국제 유가#물가상승률#실업률#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전쟁 영향으로 기름값 오르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제기

세계경제 원유 의존 낮아졌지만

전쟁 장기화할 경우 타격 불가피

물가·고용 두 토끼 잡기 과제

로이터연합뉴스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급등했다. 그 여파로 국내 휘발유 가격도 L당 2000원에 가깝게 올랐다. 정부가 사상 초유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을 정도다. 유가 상승은 업종을 불문하고 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세가 더딘 가운데 물가는 빠르게 오르는 최악의 조합이다.고물가·저성장의 최악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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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다수가 동의하는 ‘경제학의 10대 기본 원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단기적으로는 물가 상승과 실업 사이에 상충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실업률은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실업률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나타낸 것이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다.뉴질랜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는 1958년 ‘1861~1957년 영국의 실업률과 명목임금 변화율’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실업률과 명목임금 상승률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이후 명목임금 상승률 대신 물가상승률을 집어넣어도 비슷한 관계가 성립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는 미국에서도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역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했고, 이런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에 필립스 곡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1970년대 들어 세계경제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함정에 빠졌다. 두 차례 오일쇼크가 계기가 됐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생산비용이 폭등했다.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실업률을 끌어올렸다. 원유 가격 폭등→ 비용 상승→고용 악화→불경기 심화의 사이클이 나타났다. 물가는 급등하는데 실업률까지 덩달아 높아졌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뒤집어진 필립스 곡선스태그플레이션은 필립스 곡선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연실업률’이라는 개념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이 얼마가 되든 실업률은 노동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수렴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간 반비례 관계는 성립하지 않고, 필립스 곡선은 수직이 된다.한국에서도 필립스 곡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던 2022년 2월 발표한 ‘생산, 고용, 물가 관계의 변화’ 논문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간 관계를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 한국 경제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역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의 형태였다. 이 관계는 1990년대까지는 유지됐다.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필립스 곡선이 뒤집어졌다. 물가가 오르는데 실업률이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추세는 2010년대 이후에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장 위원은 “민간 소비 감소와 투자 위축 등 수요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엔 물가와 고용이 상충 관계를 보이지만 유가 상승 등 공급 측면의 충격이 발생하면 물가와 고용이 동시에 악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국제 유가가 오른다고 해서 반드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낮아져 단순히 국제 유가 상승만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하기는 섣부르다는 반론도 있다. 관건은 전쟁이 얼마나 오래가느냐 하는 것이다. 몇 달 이내 단기전으로 마무리된다면 큰 타격이 없겠지만, 장기전으로 간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정부와 중앙은행에 던진다. 일단 정부는 ‘전쟁 추경’을 추진하는 등 경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필립스 곡선이 장기적으로 수직선이라는 프리드먼의 통찰은 경기 둔화를 우려해 돈을 푸는 정책을 지속했다간 물가와 고용,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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