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휘는' 학원비가 기대만큼 효과 못내는 이유
경제야 놀자

'등골 휘는' 학원비가 기대만큼 효과 못내는 이유

유승호 기자2024.06.20읽기 5원문 보기
#사교육비#인적자본#정보 비대칭#신호 이론#학력 프리미엄#소득 격차#합리적 선택#마이클 스펜스

초·중·고 사교육비 연 27조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면

개인에겐 합리적 선택이지만

너도나도 사교육 받으니

투자한 만큼 효과 못 올려

전체론 '비합리적' 결과 초래

“같은 밀도의 부피 요소들이 하나의 구 껍질을 구성하면, 이 부피 요소들이 구 외부의 질점 P를 당기는 만유인력의 총합은….”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 나온 이른바 킬러 문항의 일부다. 이런 글을 읽고 정답을 찾기 위해 전국의 학부모들이 자녀 사교육에 돈을 들인다. 지난해에만 27조1144억원이었다. 사교육도 경제행위다. 경제학에선 인간을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삼성전자 연구개발비(약 28조3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쏟아붓는 사교육은 과연 합리적 의사결정일까.

행복은 성적순이잖아요합리적인 인간은 비용 대비 편익을 따진다. 초·중·고교생의 80%가 1인당 월 50만원 넘는 비용을 들여 사교육을 받는 것은 학부모가 투입하는 돈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교육은 돈값을 한다(Education Pays).’ 미국 노동통계국이 1년에 한 번씩 내는 보고서의 제목이다. 지난해 5월에 나온 자료를 보자. 2022년 25세 이상 미국인 중 대졸자의 주간 소득 중위값은 1432달러로 고졸자(853달러)의 1.7배였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3만 달러(약 39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 박사학위 소지자의 주간 소득 중위값은 2083달러로 대졸의 1.4배, 고졸의 2.4배였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6년에 발표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학력(학벌)의 비경제적 효과 추정’이란 논문이 있다. 성인 994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신의 전반적인 생활에 ‘만족 혹은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3095명으로 31.1%였다. 그런데 상위권 대학(입학 성적 상위 10개 대학) 출신은 ‘만족한다’는 비율이 54.0%로 훨씬 높았다. 전문대 졸업자는 35.1%, 고졸은 28.8%에 그쳤다. S대 나온 신입, 일 잘하나요?고학력자가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입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지적 수준이 높을 것이고, 그만큼 생산성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생산요소 중 하나인 인적자본이 고학력자에게 많이 축적돼 있다는 것이다.조금 다른 견해도 있다. 교육이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 학자가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다. 그는 학력을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에서 정보를 많이 가진 시장 참여자가 보내는 ‘신호’라고 봤다.구직자의 능력은 구직자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반면 기업은 구직자의 능력, 근면성, 인성 등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직원을 뽑아야 한다. 이때 대학 졸업장과 학위가 기업에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신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한 사람이 회사에서도 성실하게 일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기업이 내린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명문대가 학생의 실력을 높여준다기보다 애초에 실력 있는 학생이 명문대에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교육 효과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두 가지 관점 모두 학력과 소득 간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름 있는 대학, 취업 잘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다. 우리 애가 S대 못 가는 이유하지만 학부모를 더 큰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은 사교육이 입시에서 고득점과 명문대 입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아이만 사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기대만큼의 효과는 얻기 어렵다.문제는 돈뿐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만 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이 2021년 3만9870명으로 2년 전보다 18.9% 증가했다. 2022년 상반기에만 3만399명이었다.‘명문대를 나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해봤자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다. 아이들은 그 여정의 절반도 못 가 이미 불행해진다. 학부모는 등골이 휘고, 사교육 업자들의 배만 불린다. 개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전체로 보면 비합리적 결과가 나오는 ‘구성의 오류’다.삼성전자가 연구개발에 쓴 돈은 외화와 일자리로 돌아온다. 그보다 규모가 큰 사교육비는 한국 사회에 뭘 남기고 있을까. 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시네마노믹스

무지와 배신의 심리게임…이성과 합리적 사고의 틈을 노린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경제학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인간의 악함을 증명하려 하지만, 사람들이 상호 신뢰와 소통을 통해 협력을 선택하면서 실패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 전체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을 보여주며, 현실의 기업 카르텔이나 리니언시 제도 등에 적용되는 경제 원리다. 반복적 상호작용과 신뢰 구축이 이루어질 경우 개인들은 단기 이익보다 장기 협력을 선택할 수 있다.

2014.03.05

(17) 비싼 신호여야 신뢰할 만하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17) 비싼 신호여야 신뢰할 만하다

신뢰할 수 있는 신호는 직접적인 말보다는 실행에 따른 비용이 크다는 특징을 가진다. 가젤이 사자 앞에서 높이 뛰는 행동이나 여성의 불편한 패션처럼, 허풍을 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가를 치르는 신호만이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신뢰성 높은 신호는 비싸야 하며, 이를 통해 거짓말쟁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진정한 능력자만 생존하게 된다.

2007.08.06

(25) 역선택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25) 역선택

역선택은 거래 당사자 간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나쁜 품질의 상품이나 위험한 거래 상대방과 거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제 현상이다. 뷔페식당에서 식성 좋은 손님이 모이거나, 혈액 거래에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혈액이 공급되는 등 일상과 금융시장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경제학의 핵심이다.

2010.10.05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 안개 속 최선이 안개 밖 최악으로
시네마노믹스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 안개 속 최선이 안개 밖 최악으로

영화 '미스트'는 제한된 정보와 공포 속에서 인간이 내린 합리적 판단이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자기실현적 기대' 현상을 보여준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도 불완전한 정보 상황에서는 예상과 달리 비극적 결과를 맞이할 수 있으며, 이는 은행 뱅크런 같은 실제 경제 위기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2014.01.02

(4) 소비자, 기업 모두 이득인 '시장 경제 체제'
주니어 테샛 입문여행

(4) 소비자, 기업 모두 이득인 '시장 경제 체제'

한국은 소비자와 기업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장 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의 경쟁과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 소비자와 기업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장점이다. 가계는 소비자, 노동자, 납세자로서 역할을 하며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하지만, 따라하기 소비, 과시 소비, 속물 소비 등 비합리적 소비에 빠지기 쉽다.

2014.02.06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